서울 태평로 파이낸스센터 내 UBS증권에서 만난 이재홍 UBS한국대표(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임천복 지엔리사운드 대표, 이상현 KCC홀딩스 부회장, 함예진 양이 손을 맞잡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센터 내 UBS증권에서 만난 이재홍 UBS한국대표(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임천복 지엔리사운드 대표, 이상현 KCC홀딩스 부회장, 함예진 양이 손을 맞잡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제 꿈은요, 파티시에(제과제빵사)예요. 호텔에서 빵을 만드는 그런 꿈이에요. 그런데 엄마는 공무원이 되라고 하네요 ㅠㅠ.(중략) 부회장님, 저 퇴원 날에 오셨잖아요. 그날 찍은 사진은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도 나중에 부회장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후원하고 싶어요.”

혼다, 메르세데스 벤츠 등의 공식딜러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KCC홀딩스. 2010년 1월 서울 염창동 이상현 부회장 사무실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한 달 전 이 부회장의 도움으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던 당시 19세 함예진 양의 편지였다. 이후 두 사람은 문자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졌고, 예진양으로부터 종이학 1000마리를 선물받은 이 부회장은 예진양에게 장학금과 대학 등록금도 지원했다. 그러나 완전한 정상 상태로 돌아오지 못한 예진양은 한 학기 만에 자퇴했고,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나섰지만 장애인에 대한 현실의 벽을 느껴야 했다.

그러던 중 올초 열린 사랑의달팽이 이사회.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들의 수술과 재활을 돕기 위해 2007년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올해부터 사랑의달팽이 이사로 활동 중인 이 부회장이 예진양의 안타까운 사정을 전하자 보청기 회사 지엔리사운드의 임천복 대표가 나섰다. “적당한 자리가 있어요. 우리 회사에 취직시킬 게요.” 2009년 수술로 귀가 트이고 올해는 취직까지, 5세 때 뇌수종 수술로 청력을 잃고 15년 가까이 소리를 듣지 못한 예진양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예진양은 지엔리사운드에서 재고관리 등을 맡고 있다.

임 대표 주도로 해마다 몇 차례 장애아동으로 구성된 클라리넷앙상블 연주회를 여는 사랑의달팽이. 매번 서울파이낸스센터 로비에서 열어왔지만 올해는 여의도 IFC몰이라는 큰 무대가 생겼다. 내달 말 열리는 연주회 뒤에는 또 한 명의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이재홍 UBS한국대표가 주인공. 이 대표는 2008년부터 클라리넷앙상블에 매년 5000만원 이상을 후원하고 UBS 직원들이 행사 때마다 실무지원을 하고 있다.

연주회 준비 논의와 인터뷰를 겸해 최근 세 명의 최고경영자(CEO)와 예진양이 자리를 함께했다. 네 사람의 인연에 대해 물었다.

“1년에 한두 명씩 청각을 찾아주는 후원을 해오긴 했지만 나누는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 것은 예진양이 처음이에요. 오히려 예진양에게 감사합니다.”(이 부회장)

“금전적인 후원도 하지만 UBS 직원들이 ‘몸으로 하는’ 봉사를 많이 하는데, 결과적으로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더군요. 금융회사 특성상 혼자 하는 업무가 많은데 아이들과 부대끼는 봉사를 하면서 자부심도 느끼는 것 같습니다.”(이 대표)

“사랑의달팽이에 많은 기업들이 후원을 합니다만, 이 부회장과 이 대표 두 분은 마음까지 내주는 분들입니다. 장애아동들이 수술·재활을 통해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법인의 목표와도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분들이죠.”(임 대표)

예진양에게 세 명의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생각을 묻자 쑥쓰러운지 말을 못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늦은 밤 기자의 휴대폰에 예진양의 메시지가 왔다. “아깐 긴장돼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ㅜㅜ 세분은 제게 에너지를 주시는 멘토 같은 분들이에요.^^”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