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가격은 우스꽝스러운 수준이다. 다른 대부분의 자산에 거품이 껴 있는 반면 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이다.”

지난 4월 ‘채권왕’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가 블룸버그TV에 출연해 한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자신감은 2개월도 채 지나기 전에 무너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 펀드분석업체 리퍼의 통계를 인용, 미국 채권펀드의 지난달 손실률이 평균 1.8%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손실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시장이 요동치던 2008년 10월 이후 최악이다. FT는 자산 9000억달러(약 1009조원)에 달하는 채권 투자 펀드가 동반 손실을 기록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최근까지도 미국 국채 보유를 늘려왔던 그로스는 지난달 2.2%의 손실을 봤다. 때문에 2930억달러로 채권펀드 중 최대인 그로스 펀드의 자산은 0.5% 감소했다.

신흥국 채권 시장 역시 동반침체에 빠지고 있다. 모건스탠리가 집계하는 이머징마켓채권지수(EMBI)는 지난주까지 3주일 연속 하락했다. 특히 2.1%에 달하는 지난주 하락폭은 2011년 9월 이후 최대였다.

이는 최근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조만간 양적완화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시사한 데 따른 결과다. Fed는 채권 매입을 통해 매달 850억달러의 돈을 풀고 있으며 이 중 450억달러는 미 국채 매입에 쓰고 있다. Fed의 양적완화 축소가 채권 수요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내놓으면서 지난달 초 1.6%였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31일 2.1%까지 상승(국채값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30년간 계속돼 온 세계 채권가격 상승세가 종식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자산운용사 GAM의 아빈 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대부분 헤지펀드도 채권 값의 향방을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며 “헤지펀드들이 고금리 채권에서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지난 3주간 투자금을 빼내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미국 채권 값 하락은 신흥시장의 채권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흥국으로 유입됐던 선진국 자금이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시장을 빠져나가면서 개별 국가의 통화와 채권 값이 덩달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3일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는 달러 대비 10.3%, 브라질 헤알화는 6.1% 하락하는 등 신흥국 자산시장이 약세로 돌아서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