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절세와 탈세의 경계선' 조세피난처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지난 27일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발표했다. 벌써 두 번째다. 이와 함께 이들의 역외탈세 의혹과 과세강화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조세피난처란 기업 또는 개인의 발생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15% 이하로 낮게 부과하는 국가나 지역을 말한다. 세제상의 우대와 금융거래 익명성도 보장되기 때문에 탈세나 돈세탁의 창구로도 이용된다. 조세피난처에는 버진아일랜드, 케이맨제도 등 섬 지역 외에도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 같은 금융 선진국의 역외금융센터도 포함된다. 특히 미국의 델라웨어주와 마이애미, 영국의 시티오브런던, 네덜란드 등도 세금회피를 위한 명목상의 회사가 설립되는 곳으로 섬 지역보다 훨씬 많다. 세계적으로 50~60개의 조세피난처가 있으며, 200만개 이상의 기업과 수천개 금융회사가 법률상 주소지를 역외금융센터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글로벌기업이 조세절감 목적으로 조세피난처에 실질거래와 무관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이자, 배당, 로열티, 주식양도차익 등 자본거래 소득에 대한 세금을 회피하려는 형식적인 거래를 증가시켜 왔다. 영국의 조세정의네트워크는 2010년 말 조세피난처에 대한 한국인의 총투자 규모는 전 세계 3위인 7790억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과거 10년간 통계를 살펴보아도 조세피난처와의 수출입 실물거래 증가율은 51%인 데 비해 외환거래는 322%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각국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재정수입은 늘지 않는 반면 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과 위기탈출을 위한 재정지출은 크게 늘어나자 세수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복지예산 확보, 경제민주화 실현 차원의 과세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애플, 구글, 아마존, 스타벅스 등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조세피난처로 매출을 이전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각국 정부는 ‘도덕적 해이’라고 비판하는 데 반해 해당 기업은 법을 어긴 것이 없다고 반론을 편다. 이와 관련해 합리적 절세목적으로 세율이 낮은 곳으로 법적 소재지를 이동시키는 것과 불법적인 탈세 및 돈세탁 행위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무거래자금 이동, 손실을 가장한 비용처리, 주식배당 소득의 과다지급, 돈의 꼬리 자르기 및 익명을 이용한 위장 외국인 처리, 변칙적인 상속·증여 등의 세금탈루 행위는 철저히 조사해 징세해야 한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세금을 줄이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 국내에 납부해야 할 정상적 세금을 피하려 한 것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탈루 혐의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관련 연결계좌가 존재하고 이 계좌를 이용해 탈세 및 자금세탁 행위가 밝혀져야 한다. 물론 익명성을 특성으로 하는 조세피난처의 성격상 거래내역 파악이 쉽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긴 하다. 따라서 투자자의 도덕성에 의존하거나 정치인처럼 인기영합 차원에서 감성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국내의 미흡한 조세제도를 개선하는 게 먼저다. 조세피난처와 정보 공유를 원활하게 하고 범죄 사실이 드러날 때는 조사관의 자료 접근이 쉽도록 여건을 정비해야 한다.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일차적으로 국내의 법인세율이 높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법인세율을 낮추되 면세 부분을 축소하고 과세대상 분야를 확대함으로써 전체 세수는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세금 회피를 위해 내부이전가격을 조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실제 영업활동이 발생하는 곳에서 기표하도록 관련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 공조를 확대해 나가되 조세피난처 지역과도 양해각서 체결 또는 협정을 통해 거래내역, 인적사항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문종진 <명지대 교수·경영학 fssorkr6@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