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은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정부’와 ‘국회의원’에 주고 있다. 헌법 52조(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가 근거조항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이 의원입법만을 허용하는 것과 비교된다. 14대 국회(1992~1996년)까지는 정부입법이 의원입법보다 많았다. 그러나 15대(1996~2000년)부터 의원입법은 정부입법을 추월해 급증하기 시작했다. 15대 때 1000건을 넘어선 의원입법은 18대 국회(2008~2012년)에선 1만건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정부입법은 806건에서 1466건으로 1.5배 늘었을 뿐이다.

의원입법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국회의원들이 입법활동을 왕성하게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원입법안이 정부입법에 비해 규제심사를 안 거쳐도 되는 등 ‘안전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려스러운 점도 많은 게 사실이다.

정부입법 절차는 상당히 까다롭다. 주무 부처에서 초안을 작성하면 해당 법안과 관련된 다른 부처들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여당 정책위의장과 당정 협의도 해야 한다. 이후 국민의 의견 수렴을 위해 입법예고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입법예고 기간은 통상 20일 이상이다. 해당 부처의 입안 절차를 끝낸 뒤에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받는다. 과잉 규제를 막기 위한 취지다. 심사를 통과하면 이번에는 법제처가 기존 법 체계와 충돌하지는 않는지, 법률 용어 등이 잘못 쓰이지는 않았는지 등을 살펴본다. 이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마치면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최종 확정된다. 보통 정부입법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6개월 정도다.

반면 의원입법 절차는 훨씬 간편하다.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만 얻으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의원입법안은 발의하기 전에 입법예고, 사전심의 등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정부입법보다 법안 발의에 걸리는 시간이 최소 4개월 이상 짧다. 물론 의원 발의 법안도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뒤 해당 상임위 소속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의 검토를 거친다. 의원들이 직접 법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이때를 전후해 해당 상임위나 개별 의원은 입법 공청회나 청문회를 열기도 한다. 그런데 입법조사관 검토, 공청회 개최 등은 의무조항이 아니어서 안 거쳐도 된다.

결과적으로 의원입법은 정부입법에 비해 절차상 ‘부실 입법’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의원입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비율이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18대 국회에선 의원입법안 1만2220건 중 절반이 넘는 6822건이 폐기됐다. 여러 비슷한 법안을 한데 모아 상임위원장 대안을 만드는 바람에 ‘대안 반영 폐기’된 법안 3227건을 포함하면 의원입법안 중 82.3%인 1만49건이 폐기됐다.

◆특별취재팀 : 산업부 이건호(팀장)·이태명·정인설 기자, 정치부 김재후·이호기·이태훈 기자, 경제부 김주완 기자, 지식사회부 양병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