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한민국, 창의 본능을 믿어라
“창의성이란 삶의 경험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합성하는 것이다.” “혁신은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다.”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고(故)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꿰뚫는다. 기업이든 국가든 글로벌 저성장과 기술경쟁의 격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창의성과 혁신밖에 없다. 창의와 혁신의 결과물은 특허나 저작권 등의 지식재산이다.

창의성과 혁신을 모토로 내세우는 국제기구가 있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다. WIPO는 개인의 창의성을 장려하고, 그 결과물인 지식재산을 효과적으로 관리·보호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제 특허·상표 등의 등록시스템 운영을 비롯해 지식재산 보호를 위한 다양한 국제조약을 성안해 나가고 있다. 또 지식재산과 관련된 24개 국제조약의 이행을 관장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회원국가의 분담금 비중이 수입의 5.4% 정도에 불과해 국제기구 중 독보적인 재정 자립도를 자랑한다. 예산의 90% 이상을 국제특허 출원수수료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WIPO의 통계를 보면 누가 미래를 주도해 나가는지 알 수 있다. 아시아 지역의 특허출원이 급증하고 있다. 2011년도 전 세계에서 출원된 약 214만건의 특허 가운데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유럽연합(EU)의 단일 특허청인 유럽특허청(EPO)을 포함해 이들 5개국 특허청을 ‘IP(지식재산)-5’라 칭한다. 세계 특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IP-5는 지식재산 정책에 대한 국제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WIPO 사무총장도 옵서버로 참석할 정도로 비중있는 모임이다.

한국을 지식재산 분야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 기업과 국민의 창의성과 혁신정신이다. 한국인과 한국사회는 발명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난방시스템으로 주목받는 온돌, 과학적인 문자의 결정체인 한글, 금속활자와 측우기 등 우리 민족이 보인 창의성의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탄탄한 스토리와 기발한 퍼포먼스로 진한 감동을 선사하는 한류도 우리의 독특한 문화적 유전인자를 재차 확인시켜주고 있다.

창의와 혁신은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필자는 인문주의에 입각한 한국의 교육 전통 그리고 살을 깎는 우리 기업의 노력이 창의성과 혁신의 기적을 만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산업화의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4위의 특허 다출원 국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방심할 여유가 없다. 중국은 물론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의 추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허 외에 상표와 디자인 분야의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창조경제’를 국정의 화두로 꺼내 든 것은 당연하다. 우리 경제는 지금 잠재성장률이 저하되고, 요소투입형 성장전략이 한계에 이른 상황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의 창출이 시급하다. 새로운 산업이 삶의 질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융합형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나아가 대기업에만 의존하던 성장에서 탈피하고, 기술 중소기업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육성시켜야 한다.

지난 4월 제네바에서는 국제발명전시회가 열렸다. 한국의 기업들은 금상 등 22개의 상을 수상했다. 굴지의 전시회에 참가한 우리 기업과 개인 전체가 수상하면서 6개의 특별상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우리에겐 여전히 창의와 혁신의 유전인자가 전승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런 능력을 발전시키는 노력과 함께 지식재산의 창출과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여나가야 한다. 또한, 5대 특허강국에 걸맞게 우수한 인재들이 국제사회에 보다 많이 진출하기를 권유한다. 정부는 지식재산 분야의 인재양성과 아울러 이들의 국제기구 진출에 필요한 지원을 해 나갈 것이다. WIPO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우리 전문가들의 활동과 기여는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19일 발명의 날을 계기로 우리의 창의성과 혁신 본능이 더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의 성장동력과 미래는 우리의 머릿속에 있다.

최석영 < 주제네바 대사 sychoi79@mofat.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