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나무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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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느림보하면 으레 거북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요즘엔 좀 달라졌다. 거북이보다 훨씬 느린 녀석들도 많다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 느림보 중에서도 제일은 아마도 나무늘보가 아닐까 싶다. 하루 종일 나무 위에서 거의 꼼짝도 않는다. 움직일 수 있는 최고 속도가 분당 4m 정도라고 하니 지상 최고의 느림보라는 타이틀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어 이름 ‘sloth’도 바로 이런 굼뜬 행동에서 유래한다.
나무늘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눈에는 게으름뱅이의 전형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무늘보의 서행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무늘보는 개미핥기와 먼 친척뻘이다. 개미핥기의 주식이 개미인 반면 이 녀석들은 주로 나뭇잎을 먹고 산다. 문제는 나뭇잎은 영양가도 별로 없는데다 소화도 잘 안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무늘보의 위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어 여기서 아주 천천히 나뭇잎을 소화시켜야 한다. 완전히 소화되는 데는 보통 한 달이나 그 이상까지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아주 비효율적인 소화 흡수 시스템인 셈이다.
그래서 나무늘보가 고안해 낸 게 바로 낮은 신진대사율이다. 나무늘보 대사율은 비슷한 크기 다른 포유류의 절반도 안된다. 근육량은 무게가 비슷한 다른 동물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체온 역시 낮아 왕성하게 활동할 때 30~34도 정도고 쉴 때는 더 낮다.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역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우리 눈에는 한없이 게을러 보이는 움직임도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소산이지 결코 게으르기 때문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엊그제 난데없이 나무늘보를 입에 올렸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을 하루 앞둔 날 김중수 총재를 지칭한 듯 “자칫 청개구리 심리를 갖고 있거나 호주산 나무늘보의 행태를 보이는 일이 없도록 고심하고 국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경기는 악화일로인데 한은이 6개월간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나무늘보처럼 꾸물대며 금리인하를 미루다가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낭패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대표의 지적에 크게 놀랐는지, 한은은 바로 다음날 열린 금통위에서 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내렸다. 이 대표의 나무늘보 인용이 결과적으로 효과를 본 셈이다. 그런데 나무늘보는 이 대표의 말과는 달리 ‘호주산’은 아니다. 중남미에만 분포한다. 이 대표가 아마도 호주의 코알라와 나무늘보를 혼동한 것 아닌가 싶다. 옥에 티라고 해야 하나?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나무늘보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눈에는 게으름뱅이의 전형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무늘보의 서행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무늘보는 개미핥기와 먼 친척뻘이다. 개미핥기의 주식이 개미인 반면 이 녀석들은 주로 나뭇잎을 먹고 산다. 문제는 나뭇잎은 영양가도 별로 없는데다 소화도 잘 안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무늘보의 위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어 여기서 아주 천천히 나뭇잎을 소화시켜야 한다. 완전히 소화되는 데는 보통 한 달이나 그 이상까지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아주 비효율적인 소화 흡수 시스템인 셈이다.
그래서 나무늘보가 고안해 낸 게 바로 낮은 신진대사율이다. 나무늘보 대사율은 비슷한 크기 다른 포유류의 절반도 안된다. 근육량은 무게가 비슷한 다른 동물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체온 역시 낮아 왕성하게 활동할 때 30~34도 정도고 쉴 때는 더 낮다.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역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우리 눈에는 한없이 게을러 보이는 움직임도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소산이지 결코 게으르기 때문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엊그제 난데없이 나무늘보를 입에 올렸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을 하루 앞둔 날 김중수 총재를 지칭한 듯 “자칫 청개구리 심리를 갖고 있거나 호주산 나무늘보의 행태를 보이는 일이 없도록 고심하고 국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발언했다. 경기는 악화일로인데 한은이 6개월간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나무늘보처럼 꾸물대며 금리인하를 미루다가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낭패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대표의 지적에 크게 놀랐는지, 한은은 바로 다음날 열린 금통위에서 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내렸다. 이 대표의 나무늘보 인용이 결과적으로 효과를 본 셈이다. 그런데 나무늘보는 이 대표의 말과는 달리 ‘호주산’은 아니다. 중남미에만 분포한다. 이 대표가 아마도 호주의 코알라와 나무늘보를 혼동한 것 아닌가 싶다. 옥에 티라고 해야 하나?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