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의하는 법사위 여야 간사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권성동 새누리당 간사(왼쪽)와 이춘석 민주통합당 간사가 30일 전체회의에서 법안 처리 문제를 두고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숙의하는 법사위 여야 간사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권성동 새누리당 간사(왼쪽)와 이춘석 민주통합당 간사가 30일 전체회의에서 법안 처리 문제를 두고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3개의 경제민주화 법안 중 하도급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1984년 법 제정 이후 30년 만에 개정된 이 법이 오는 11월 시행되면 원청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당 하도급 행위로 과징금을 부과받는 것과 별개로 하청업체가 민사소송을 걸면 하청업체 피해액의 3배를 배상해주도록 규정하고 있어서다.

손해배상 범위도 넓어졌다. 하청업체의 기술을 빼앗는 경우에 더해 △부당한 단가 인하 △발주 취소 △반품 행위 등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했다. 개정 내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대기업 A사가 휴대폰용 인쇄회로기판(PCB)을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 B사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고, B사가 부당하다고 이의를 제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B사의 신고를 받은 공정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B사 피해액의 두 배를 A사에 과징금으로 매길 수 있다. 또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하면 A사는 B사 피해액의 두 배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경제민주화 1호' 하도급법 처리 파장…과징금에 벌금·손해배상액까지 '3중처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번에 바뀐 개정안에 따라 B사는 A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해 승소하면 피해액의 3배까지 받아낼 수 있다. A사는 과징금, 벌금,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는 3중 처벌을 받게 되는 셈이다. 산업계에서 과도한 ‘기업 벌주기’라는 반발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에선 하도급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대기업들이 해외 업체로 하도급 거래를 전환하는 부작용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원자재값이 오를 경우 원청업체와 납품단가 조정을 할 수 있는 협의권을 중소기업협동조합에 주는 내용도 기존 하도급 거래 관행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관측된다.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을 부여받는 협동조합은 전국 단위의 협동조합 220곳과 사업협동조합 346곳에 달한다. 앞으로 납품단가 조정이 경제적인 협상의 과정이 아니라 이권 다툼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상장사 등기임원의 개별 연봉을 공개하는 법안도 재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원안대로 통과됐다. 대기업 총수가 얼마나 많은 연봉을 받는지 밝혀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입법 취지다. 지금은 상장사들이 등기임원 연봉총액만 공개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법 개정에 반대할 만큼 문제가 많다는 게 산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산업계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된 것보다 기업 의견이 묵살됐다는 점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전경련과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5단체는 지난 26일 국회에서 논의 중인 20가지 입법안의 수정·철회를 요구한 데 이어 29일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만나 재계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국회는 전광석화처럼 법안을 처리했다.

이 같은 분위기라면 이번엔 통과되지 않았지만 부당 내부거래를 엄격히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도 오는 6월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번에 통과된 경제민주화법안들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반대하는 법안”이라며 “6월 국회에서 얼마나 큰 경제민주화 입법 쓰나미가 밀어닥칠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소연했다.

이태명/김병근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