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조세피난처 계좌 명단에 유명인을 비롯한 한국인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측 인사의 이름도 들어 있어 명단이 공식 발표되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버진아일랜드에 한국인 계좌

ICIJ의 제러드 라일 기자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남미 카리브해에 있는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영국령)에 금융계좌를 보유한 사람 중 한국인이 상당수 포함돼 있고, 유명한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라일은 관련 자료를 최초로 입수한 탐사전문기자로, 비영리단체인 ICIJ와 손잡고 1년 넘게 조세피난처의 실태를 취재해왔다.

그는 “몇 달에 걸쳐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과 북한 사람의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인에 대한 ICIJ의 분석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이유에서다. 라일 기자는 “50명의 이름이 있다면 얘기되는 (유명한) 이름은 2명 수준”이라며 “다른 자료들을 충분히 검토한 후 공익에 부합하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명단 분석이 끝나면 이르면 상반기 중, 늦어도 연내 버진아일랜드에 은밀한 돈을 맡기고 있는 한국인들의 이름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측 인사의 경우 집권층일 가능성도 있다. 라일 기자는 “세르비아와 스웨덴 관련 후속보도를 마친 뒤 한국 자료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ICIJ가 확보한 명단의 위력은 이미 검증됐다. 지난 4일 전 세계 유명인 수천 명의 신상을 공개하면서다.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부인의 역외계좌가 확인되면서 재산을 고국으로 옮겼고, 몽골에선 바야르척트 상가자브 국회 부의장이 정계를 은퇴했다.

◆국세청 “철저히 조사하겠다”

한국 국세청은 ICIJ에 한국인 명단 제공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이후 다른 경로로 명단 입수 작업에 나섰지만 별 성과가 없는 상태다.

그러나 국세청 관계자는 “명단이 입수되면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버진아일랜드는 최근 세무조사에서 역외탈세에 악용된 사례가 많아 주시하고 있다”며 “명단에 오른 한국인이 모두 탈세 혐의가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개연성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지난해 말까지 케이만군도·버뮤다·버진아일랜드·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해외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금융회사로 합법적으로 송금한 액수는 16억2000만달러에 이른다. 전체 국외 금융투자의 40% 규모다. 국세청이 2년 동안 10억원 초과 금융자산을 해외금융계좌에 둔 보유자로부터 자진신고를 받았지만 버진아일랜드에선 신고가 1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조세피난처 역외탈세에 대한 각국의 공조 움직임도 빨라졌다. 지난 19일 워싱턴에 모인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들은 회원국 간 조세정보 교환을 강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와 각종 역외탈세에 적극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