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된 인도 민족기업…과감한 혁신·잇단 M&A…글로벌 기업 키워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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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 망갈람 비를라 <아디티야비를라그룹 회장>
창업 4세의 도전
28세에 갑작스런 대기업 승계…"젊은 애가 뭘 안다고 …" 눈총…구조조정으로 내실부터 다져
신흥국 등에 올라타라
사회기반시설 사업에 집중…알루미늄·시멘트 100억弗 투자…인도 모바일 통신에도 손대
글로벌 기업'우뚝'
경영권 승계 후 매출 20배로…세계 33개국 13만명 고용
창업 4세의 도전
28세에 갑작스런 대기업 승계…"젊은 애가 뭘 안다고 …" 눈총…구조조정으로 내실부터 다져
신흥국 등에 올라타라
사회기반시설 사업에 집중…알루미늄·시멘트 100억弗 투자…인도 모바일 통신에도 손대
글로벌 기업'우뚝'
경영권 승계 후 매출 20배로…세계 33개국 13만명 고용
아디티야비를라그룹. 한국인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1857년 인도 뭄바이에 세워져 156년의 역사를 가진 대기업 집단이다. 알루미늄 사업부터 통신과 유통 보험 금융에 걸친 폭넓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는 창업자인 간샴 다스(G. D.) 비를라의 증손자 쿠마르 망갈람 비를라다.
1995년 28세의 나이에 아디티야비를라의 수장이 된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매출 400억달러(약 44조7800억원)로 타타그룹과 얼라이언스그룹에 이은 인도 3대 회사를 이끌고 있다. 아디티야비를라가 세계 33개국에 13만3000명을 고용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된 데도 그의 공(功)이 컸다. ○156년 기업 이어받은 재벌 4세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창업 4세다. 비를라 가문은 인도 서부 라자스탄주의 상인 계급인 마르와리에 속해 있다. 마르와리는 라자스탄말로 ‘사막’을 뜻한다. 마르와리 상인들은 중동 등지까지 오가는 해외 무역에 능란했다. 오늘날 아디티야비를라의 해외 매출 비중이 인도 기업 중 이례적으로 60%에 이르는 까닭도 대대로 전수된 ‘해외 무역 DNA’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업자 G. D. 비를라는 가족을 중심으로 회사를 관리하며 아디티야비를라를 창업했다. ‘아디티야’는 힌두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그는 식민지 시대 기업인 중에 마하트마 간디와 가장 친한 인물로 꼽힌다. 아디티야비를라는 간디가 창당한 국민회의를 금전적으로 후원하며 1930년대 전개된 영국 식민지배 비(非)협력 운동과 영국 상품 불매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인도 최대 재벌인 타타그룹이 영국 식민지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는 당시 아디티야비를라의 주력업종인 직물사업이 간디의 반영(反英) 운동으로 반사 효과를 누린 반면, 제철과 철로사업을 주로 영위했던 타타는 영국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야 했던 차이에서 빚어진 결과다.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아디티야비를라가 구리 시멘트 알루미늄 등 국가 기간산업 관련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시절의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동반성장하는 비를라의 가풍을 이어 받은 망갈람 비를라 회장도 벽지에 41개 학교와 18개 병원을 운영하는 한편 3700여개 마을을 지원하며 인도 기업 중에 가장 적극적인 사회책임 경영을 하고 있다.
○혁신으로 도약 기반 다져
아디티야비를라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은 G. D. 비를라의 손자이며 망갈람 비를라 회장의 아버지인 아드티야 비크람 비를라가 시작했다. 건국 이후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시행한 인도 정부 아래에서 성장의 한계를 느낀 것이 이유였다. 비크람 비를라는 1969년 태국에 섬유공장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 이집트 캐나다 호주 등에도 지사를 내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순조로워 보이던 아디티야비를라의 성장에 비상등이 켜진 건 1995년 비크람 비를라가 갑자기 사망하면서다. 뭄바이대에서 무역을 공부하고 런던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당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받게 됐다.
당시 아디티야비를라의 연간 전체 매출은 20억달러 정도였다. 그나마도 섬유 등 일부 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매출이 인도 국내에서 발생했다. 인도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높은 물가상승률과 그에 따른 고금리로 국내 사업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대기업 집단을 승계한 망갈람 비를라 회장에 대한 인도 재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경영권을 장악한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폭넓은 사업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핵심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핵심 분야의 사업은 통폐합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데도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전기기기회사에서 시작해 금융, 방송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한 제너럴일렉트릭(GE)이 모델이었다. 이처럼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부친이 사망한 이후 회사의 내실을 다지며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신흥국 성장에 맞춰진 성장전략
10년간의 내부 정비를 거친 쿠마르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2007년 캐나다의 알루미늄 압연회사 노벨리스를 60억달러(약 6조7000억원)에 인수하며 이목을 끌었다. 한국에도 지사가 있는 노벨리스를 인수함으로써 아디티야비를라는 세계 최대의 알루미늄 압연업체로 도약하게 됐다. 비철금속 관련 수요 증가에 맞춰 강점이 있던 알루미늄 관련 산업을 키우기 위한 포석이었다. 아디티야비를라는 단일 부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 제련소도 보유하고 있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카본블랙 제조업체인 콜롬비아 케미컬을 8억7000만달러에 인수했다. 고무와 인쇄용 잉크의 주요 재료로 이용되는 카본블랙 분야에서도 아디티야비를라가 세계 최대 생산업체로 올라섰다.
망갈라 비를라 회장은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들이 사회기반시설 구축 단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이처럼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비료와 시멘트 관련 산업에 투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구리 석탄과 같은 원자재 확보에 나서는 한편 알루미늄과 시멘트 분야의 신규 사업 개발에 1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성장하고 있는 인도 통신시장에 발맞춰 70억달러를 2011년부터 모바일 통신에 투자하고 있다.
경영권을 승계한 18년 전과 비교해 그룹의 전체 매출을 20배 확장한 망갈라 비를라 회장은 적극적인 사업 확장을 통해 2015년 매출을 650억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내놨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인도의 경기 하강으로 이 같은 목표 달성이 가능할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증조할아버지인 G. D. 비를라에게 이어받은 마르와리 상인의 피로 어떻게 위기를 타개해 나갈지 관심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1995년 28세의 나이에 아디티야비를라의 수장이 된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매출 400억달러(약 44조7800억원)로 타타그룹과 얼라이언스그룹에 이은 인도 3대 회사를 이끌고 있다. 아디티야비를라가 세계 33개국에 13만3000명을 고용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된 데도 그의 공(功)이 컸다. ○156년 기업 이어받은 재벌 4세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창업 4세다. 비를라 가문은 인도 서부 라자스탄주의 상인 계급인 마르와리에 속해 있다. 마르와리는 라자스탄말로 ‘사막’을 뜻한다. 마르와리 상인들은 중동 등지까지 오가는 해외 무역에 능란했다. 오늘날 아디티야비를라의 해외 매출 비중이 인도 기업 중 이례적으로 60%에 이르는 까닭도 대대로 전수된 ‘해외 무역 DNA’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업자 G. D. 비를라는 가족을 중심으로 회사를 관리하며 아디티야비를라를 창업했다. ‘아디티야’는 힌두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그는 식민지 시대 기업인 중에 마하트마 간디와 가장 친한 인물로 꼽힌다. 아디티야비를라는 간디가 창당한 국민회의를 금전적으로 후원하며 1930년대 전개된 영국 식민지배 비(非)협력 운동과 영국 상품 불매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인도 최대 재벌인 타타그룹이 영국 식민지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는 당시 아디티야비를라의 주력업종인 직물사업이 간디의 반영(反英) 운동으로 반사 효과를 누린 반면, 제철과 철로사업을 주로 영위했던 타타는 영국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야 했던 차이에서 빚어진 결과다.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아디티야비를라가 구리 시멘트 알루미늄 등 국가 기간산업 관련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시절의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동반성장하는 비를라의 가풍을 이어 받은 망갈람 비를라 회장도 벽지에 41개 학교와 18개 병원을 운영하는 한편 3700여개 마을을 지원하며 인도 기업 중에 가장 적극적인 사회책임 경영을 하고 있다.
○혁신으로 도약 기반 다져
아디티야비를라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은 G. D. 비를라의 손자이며 망갈람 비를라 회장의 아버지인 아드티야 비크람 비를라가 시작했다. 건국 이후 사회주의 경제정책을 시행한 인도 정부 아래에서 성장의 한계를 느낀 것이 이유였다. 비크람 비를라는 1969년 태국에 섬유공장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 이집트 캐나다 호주 등에도 지사를 내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순조로워 보이던 아디티야비를라의 성장에 비상등이 켜진 건 1995년 비크람 비를라가 갑자기 사망하면서다. 뭄바이대에서 무역을 공부하고 런던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당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받게 됐다.
당시 아디티야비를라의 연간 전체 매출은 20억달러 정도였다. 그나마도 섬유 등 일부 사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매출이 인도 국내에서 발생했다. 인도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높은 물가상승률과 그에 따른 고금리로 국내 사업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대기업 집단을 승계한 망갈람 비를라 회장에 대한 인도 재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경영권을 장악한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폭넓은 사업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핵심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핵심 분야의 사업은 통폐합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데도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전기기기회사에서 시작해 금융, 방송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한 제너럴일렉트릭(GE)이 모델이었다. 이처럼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부친이 사망한 이후 회사의 내실을 다지며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신흥국 성장에 맞춰진 성장전략
10년간의 내부 정비를 거친 쿠마르 망갈람 비를라 회장은 2007년 캐나다의 알루미늄 압연회사 노벨리스를 60억달러(약 6조7000억원)에 인수하며 이목을 끌었다. 한국에도 지사가 있는 노벨리스를 인수함으로써 아디티야비를라는 세계 최대의 알루미늄 압연업체로 도약하게 됐다. 비철금속 관련 수요 증가에 맞춰 강점이 있던 알루미늄 관련 산업을 키우기 위한 포석이었다. 아디티야비를라는 단일 부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 제련소도 보유하고 있다.
2011년에는 세계 3대 카본블랙 제조업체인 콜롬비아 케미컬을 8억7000만달러에 인수했다. 고무와 인쇄용 잉크의 주요 재료로 이용되는 카본블랙 분야에서도 아디티야비를라가 세계 최대 생산업체로 올라섰다.
망갈라 비를라 회장은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들이 사회기반시설 구축 단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 이처럼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비료와 시멘트 관련 산업에 투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 등과의 인터뷰에서 “구리 석탄과 같은 원자재 확보에 나서는 한편 알루미늄과 시멘트 분야의 신규 사업 개발에 10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 성장하고 있는 인도 통신시장에 발맞춰 70억달러를 2011년부터 모바일 통신에 투자하고 있다.
경영권을 승계한 18년 전과 비교해 그룹의 전체 매출을 20배 확장한 망갈라 비를라 회장은 적극적인 사업 확장을 통해 2015년 매출을 650억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내놨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인도의 경기 하강으로 이 같은 목표 달성이 가능할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증조할아버지인 G. D. 비를라에게 이어받은 마르와리 상인의 피로 어떻게 위기를 타개해 나갈지 관심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