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는 1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 중단을 촉구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바른사회시민회의는 1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 중단을 촉구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배 아픈 사람에게 소화제가 아니라 두통약을 주는 꼴입니다.”

국회가 추진 중인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잘못된 처방’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가 1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일감 몰아주기 금지 입법 반대’ 기자회견에서다. 회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계열사 간 부당거래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계열사 거래 전체를 규제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기업 활동을 옥죄어 한국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감 몰아주기 금지 입법에 대한 반발이 재계에 이어 경제학계와 시민단체로까지 확산된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정당한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라는 이름을 붙여 부당한 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경제가 2%대의 저성장 시대로 추락한 것은 국회가 행복, 복지, 경제민주화 등 듣기 좋은 단어에만 신경써온 탓”이라며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과잉으로 치닫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난 10년간 기업 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1.7%에 불과하다”며 “내부거래를 막아 기업들의 거래비용이 늘어나면 기업들의 투자는 더 얼어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내부거래를 늘리는 이유가 지나친 규제로 외부 거래비용이 올라간 탓인데 내부거래마저 규제하면 기업들의 경제활동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오 교수는 “내부거래를 규제하면 엄청난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내부거래 규제가 ‘입법 만능주의’란 비판도 제기됐다. 최근 개정된 상법과 상속·증여세법의 효과가 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경제 활동의 자유, 거래 상대방 선택의 자유와 배치될 수 있는 새로운 법을 졸속으로 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에는 ‘상당히’ ‘제공하기 어려운’ ‘경제력 집중을 강화하는 행위’ ‘정당성이 인정되는’ 등 불명확한 개념이 포함돼 자칫 조사 남발과 소송 폭증으로 기업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과 교수도 “규제는 유예기간을 두고 효과를 점검하면서 서서히 도입해야 하는 것”이라며 “지금 국회의 추진 속도는 지나치게 빠르다”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