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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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출범 이후 역내 회원국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는 외국인 범죄 문제다. 국경을 넘나드는 게 예전보다 수월해져 이른바 집시로 불리는 떠돌이들의 유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떠돌이가 일정한 생계수단이 있을 리 만무하다. 소매치기 등 범죄행위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은 이들을 요주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주거가 없는 집시들을 국외 추방하도록 해 인종차별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집시는 원래 동유럽에서 온 떠돌이 집단을 뜻했지만 최근의 인류학적인 연구 결과 인도 북부의 자트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 구석구석에 퍼져 부평초처럼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지금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강물에 꽃을 띄우며 추모제를 지낸다.

집시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인종적 의미를 떠나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사람으로 그 의미를 넓혀나갔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사회시스템의 지속적인 변화로 끊임없이 변신해야 하는 현대인의 처지도 집시에 비유되고 있다. 우리들이 비하하고 홀대하던 집시가 우리의 처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기막힌 역설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