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그동안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대기업의 편법 증여를 사실상 묵인해 왔다며 이들 기관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2004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완전 포괄주의 도입으로 얼마든지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의 이 같은 권고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에 대한 소급 적용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 해당 기업들의 집단적 반발이 예상된다.

○수천억원 세금폭탄 맞을 수도

"과거 일감 몰아주기도 과세하라"
감사원은 10일 ‘주식 변동 및 자본거래 과세 실태’ 감사 결과를 통해 주요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 일감 떼어주기,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 등을 통해 부를 편법으로 이전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2001년 2월 설립한 비상장법인 현대글로비스에 그룹 물류사업을 몰아준 결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에 최초로 출자한 20억여원의 주식가치가 2조원으로 치솟았다는 게 감사원의 지적이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동생이 설립한 비상장법인에 스크린 광고영업 대행 독점권을 넘겨 이득을 봤다고 감사원 측은 설명했다. 신세계, STX, 롯데 등 9개 대기업도 비슷한 사례로 열거됐다.

이처럼 대기업 대주주들이 비상장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자녀 등에게 편법으로 부를 이전하는데도 기재부와 국세청이 손놓고 있었다는 게 감사원의 최종 결론이다. 만약 국세청이 감사원 권고대로 과세에 나설 경우, 감사원 주장대로 편법 증여를 통해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는 대기업 총수 등은 최고 수천억원의 세금폭탄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세청 “일단 검토”

이 같은 감사 결과에 대해 재계와 일부 세법 전문가들은 과세의 부당 소급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세청이 이미 법률 검토를 통해 과세가 어렵다고 판단한 사안을 이제 와서 과세하겠다고 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소급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국세청은 2004년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를 도입했을 때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여부를 검토했지만 과세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해당 기업의 주식가치 상승이 전부 일감 몰아주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승분 전체가 증여로 인한 것인지, 해당 기업의 자체적인 경영 혁신에 따른 것인지를 정확하게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매년 달라진 주식가치를 어느 시점에 놓고 과세하느냐 여부도 난제였다.

바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오는 7월부터 실시되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 법안은 개별 과세 기준을 제시해 놓고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45조의 3항에 ‘특수관계법인으로부터 일감을 받은 법인(수혜법인)의 사업연도를 기준으로 수혜법인과 특수법인의 거래 비율이 일정 비율(30%)을 초과하는 경우 해당 수혜법인의 지배주주와 그 지배 주주의 친족이 일정한 이익을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해 증여세를 과세한다’고 규정한 것. 증여의 시기(사업연도), 증여 판단 기준(30% 초과) 등을 명확히 한 것이다. 따라서 감사원의 이번 통보는 이 같은 기준을 2004년부터 소급 적용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현재 국세청은 감사 결과를 통보받고 “9개 대기업에 대한 증여세 과세 요건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향후 국세청이 과세에 나설 경우 대규모 소송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해당 그룹들은 “과세당국이 정밀한 검토를 거쳐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속으로는 ‘우려 반, 불만 반’의 분위기가 팽배하다.

임원기/도병욱 기자 wonkis@hankyung.com

■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법률에 별도의 면세 규정을 두지 않는 한 상속·증여로 볼 수 있는 모든 거래에 대해 세금을 물린다는 원칙. 2003년 12월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처음 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