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엔저냐, 엔고의 수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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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
“우리는 엔화 약세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엔화 강세의 수정, 또는 엔고의 수정이라고 표현합니다.”
지난 3일 경북 구미에 있는 도레이첨단소재 회의실. 탄소섬유 공장 준공식 참석차 방한한 일본 섬유회사 도레이의 닛카쿠 아키히로 사장의 말에 분위기가 일순간 싸늘해졌다. 한국 기자들이 엔화약세가 일본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고 묻자 닛카쿠 사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환율 변동에 도레이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전에 엔화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쏟아냈다. 닛카쿠 사장은 “환율은 그 나라의 체력을 반영하는데, 엔화 가치가 단기간에 20~30%나 올랐던 것은 비정상”이라며 “적정 환율은 달러당 100엔을 기준으로 아래위로 5엔 정도”라고 말했다. 2009년 4월 달러당 100엔대였던 환율이 작년 초 76엔대까지 내려갔던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현재 달러당 93엔대니까 여전히 엔고이며, 엔화 강세의 수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질문에 대한 답변뿐 아니라 한국 기자들의 ‘부적절한’ 용어 사용까지 바로 잡으려 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주최한 ‘2013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토론자로 연단에 올랐다. 그는 “일본의 엔저 정책이 주변국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 상황은 ‘통화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돈을 풀어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아베노믹스’가 불만인 나라들은 알아서 대응하라는 도발적인 발언도 했다.
기업인과 교수로 신분이 다르고 지방 공장과 서울에서 각각 나온 발언이지만, 두 사람의 생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엔화가치에 대한 일본 주류 사회의 생각이 자기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환율을 믿지 못한다는 불신도 깔려 있다.
일본인들이 환율에 예민한 것은 1985년 플라자합의의 ‘악몽’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주도로 달러약세, 엔화강세 국면이 지속되면서 일본은 수출에 타격을 입고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어도 플라자합의의 트라우마는 여전한 듯하다. 환율 상승을 ‘약세’가 아니라 ‘수정’이라고 굳이 강조하는 일본 기업인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
지난 3일 경북 구미에 있는 도레이첨단소재 회의실. 탄소섬유 공장 준공식 참석차 방한한 일본 섬유회사 도레이의 닛카쿠 아키히로 사장의 말에 분위기가 일순간 싸늘해졌다. 한국 기자들이 엔화약세가 일본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고 묻자 닛카쿠 사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환율 변동에 도레이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전에 엔화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쏟아냈다. 닛카쿠 사장은 “환율은 그 나라의 체력을 반영하는데, 엔화 가치가 단기간에 20~30%나 올랐던 것은 비정상”이라며 “적정 환율은 달러당 100엔을 기준으로 아래위로 5엔 정도”라고 말했다. 2009년 4월 달러당 100엔대였던 환율이 작년 초 76엔대까지 내려갔던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현재 달러당 93엔대니까 여전히 엔고이며, 엔화 강세의 수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질문에 대한 답변뿐 아니라 한국 기자들의 ‘부적절한’ 용어 사용까지 바로 잡으려 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주최한 ‘2013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토론자로 연단에 올랐다. 그는 “일본의 엔저 정책이 주변국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 상황은 ‘통화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돈을 풀어 엔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아베노믹스’가 불만인 나라들은 알아서 대응하라는 도발적인 발언도 했다.
기업인과 교수로 신분이 다르고 지방 공장과 서울에서 각각 나온 발언이지만, 두 사람의 생각에는 공통점이 있다. 엔화가치에 대한 일본 주류 사회의 생각이 자기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환율을 믿지 못한다는 불신도 깔려 있다.
일본인들이 환율에 예민한 것은 1985년 플라자합의의 ‘악몽’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주도로 달러약세, 엔화강세 국면이 지속되면서 일본은 수출에 타격을 입고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어도 플라자합의의 트라우마는 여전한 듯하다. 환율 상승을 ‘약세’가 아니라 ‘수정’이라고 굳이 강조하는 일본 기업인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박해영 산업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