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애플도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다. 팀 쿡 애플 CEO는 1일 중국어 홈페이지에 장문의 사과 성명을 실었다. 애플의 AS 정책에 불만을 품은 중국 언론들의 노골적 ‘애플 때리기’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우리의 소통부족이 거만하다거나 소비자 불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며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AS 관행도 전면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15일 중국 관영 CCTV가 보증기간 내 고장난 제품을 새 걸로 바꿔주지 않는 애플의 AS 정책에 맹비난을 퍼부은 지 보름여 만이다.

애플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CEO의 이름으로 특정 지역에서 공식 사과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실 애플은 소비자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적극 수용하는, 그런 유의 기업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길을 갈 테니 맘에 드는 소비자들만 따라오라는 식이었다. 이런 마이웨이는 제품개발 판매 AS 등 모든 면에서 은연중 드러났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계산된 전략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애플의 이런 ‘오만한’ 태도는 반감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열광적인 ‘애플 빠’를 만들어낸 요인이기도 했다.

그런 애플이 중국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30%에 해당하는, 연간 3억대 규모의 중국 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애플의 사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CCTV의 ‘소비주장’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중국 ‘소비자 권리일’인 매년 3월15일 내보내는 이 프로그램은 외국 유명 상품과 기업의 약점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중국 진출 외국기업에는 한 번 걸리면 끝장이라는 ‘공포의 저승사자’로 통한다. 올해는 애플이, 지난해에는 맥도날드와 까르푸가, 2011년에는 월마트와 금호타이어가 나쁜 기업에 꼽혔다. 1994년 중국 진출 후 줄곧 시장 1위를 달려온 금호타이어는 “톈진공장 제품에 심각한 안전 문제가 있다”는 CCTV의 보도 후 현지 법인장이 즉각적으로 공식 사과했지만 아직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애플로서는 ‘차이나 파워’를 실감한 셈이다. 하지만 도도하기만 했던 애플이 변한 데는 한국의 역할도 없지 않았다고 본다. 2010년 한국 정부가 애플의 AS 정책에 제동을 걸어 일부를 시정한 것도, 삼성전자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에 올라선 것도 애플에 변화의 필요성을 일깨웠을 것이다. 이런 변화가 애플의 영화를 재현할지, 오히려 몰락을 가속화할지 두고 볼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면 어떻게 대응했을지도 궁금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