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12조원에 달하는 세입 부족을 지적하며 ‘한국판 재정절벽’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는 전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3%로 대폭 끌어내리며 추경 논의를 본격 점화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비관론을 쏟아내는 정부에 대해 반발 기류도 감지된다. 다음달에 성장률 전망 수정치를 내놓는 한국은행이 대표적이다. 자칫 경기논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재정부 “재정절벽 온다”

기획재정부와 청와대는 29일 오전 각각 브리핑을 열고 올해 세입 결손 상황을 설명했다. 올해 세수 부족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해 정부 예산안을 제출한 이후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6조원의 국세 수입이 부족하게 됐지만 국회에서 이를 조정하지 않았다”며 “올해 성장률이 당초 예상(3.0%)보다 추락할 가능성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주식 매각이 잠정 중단되면서 세외수입도 6조원 덜 걷힐 것으로 봤다. 이에 따른 전체 세입 감소분 12조원을 충당하는 데 추경이 우선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추경은 ‘12조원+α’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세입 부족을 그대로 방치하면 하반기 재정여력 부족과 맞물리면서 미국과 같은 재정절벽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도 “경기 회복 기반이 미약한 상황에서 재정지출의 급격한 축소는 하반기 경기급락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산업활동동향’은 이 같은 경기진단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2월 광공업생산은 전월 대비 0.8%, 소매판매는 0.1% 감소하며 두 달째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고심하는 한은

정부 진단을 모두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정책의 보조를 맞춰야 할 한은은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2.3%)에 수긍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한은은 지난해 12월 올해 경제성장률을 2.8%로 예상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3월 금통위 직후 가진 간담회에서 “1분기 성장률은 전분기에 비해 훨씬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4분기 0.3% 성장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1분기 0.5~0.6% 성장을 예상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반기에 1%대 성장을 하면 올해 2%대 중후반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한은의 내부적인 분석이다.

게다가 한은 일각에서는 “정부가 성장률 전망치를 확 낮춰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보인다. 한은은 다음달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김 총재가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온 점을 감안하면 한은이 내달 제시할 수정치가 정부 수정치에 가까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정부는 국회를 상대로 힘겨운 설득을 하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여당과의 조율도 쉽지 않아

새누리당도 추경 논의 과정에서 호락호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대행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6조원 정도의 세수 부족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당·정·청 사이에도 이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추경 규모에 대해서도 “쓸 곳을 먼저 정하고 그에 따라 규모를 계산하는 게 맞다”고 못박았다.

성장률 전망치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정부는 ‘현실 인식을 명확하게 하자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김정관 재정부 종합정책과장은 “한은을 포함한 민간연구기관의 성장률 수치엔 세수 결손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제시한 2.3%는 작년 4분기 성장률 하향, 세계 경제 전망치 하락 등을 모두 포함한 객관적인 숫자”라고 부연했다.

김유미/서정환 기자 warmfront@hankyung.com

■ 재정절벽(fiscal cliff)

정부가 지출을 갑자기 줄이거나 세금 감면 혜택을 대폭 축소해 기업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제 전반에 충격을 주는 현상. 지난해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오바마 정부가 국가부채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재정절벽이 우려된다고 말해 이슈가 됐다. 정부는 올해 재정 수입이 당초 계획보다 12조원 적게 걷힐 것이라며 ‘한국형 재정절벽’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