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철의 여인'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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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또 다른 별명은 ‘티나(Tina)’였다. “다른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의 약자다. 대처가 11년 총리 재임 중 국가의 근본적 수술을 추진할 때마다 단호히 외쳤던 말이다. 연설문 초안에 ‘아마(maybe)’라는 단어가 있으면 여지없이 지웠던 일화도 있다. 사실 ‘철의 여인’도 소련이 대처를 조롱한 것인데, 되레 “그말 좋네”라며 반겼다고 한다.
대처는 1925년 중부 소도시 그랜섬에서 식료품점을 하는 부모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보듯 평생 ‘식료품집 딸(grocery daughter)’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주위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대처를 ‘한번도 소녀였던 적이 없는 소녀’로 기억한다.(박지향 ‘대처스타일’) ‘남에게 기대지 말라’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처는 훗날 개인의 문제를 모두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들에 맞서 “사회(society)?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과 가정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대처 집권 이전 1970년대 영국은 이른바 영국병(病)에 찌든 의욕상실 환자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원조 복지국가가 경제난과 만성화된 파업, 고실업, 무거운 세금, 겹겹이 규제에 치여 속절없이 추락했다. 특히 1978년 ‘불만의 겨울’에는 공공노조 파업으로 거리마다 쓰레기가 쌓이고 죽은 사람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에 넌더리가 난 국민은 첫 여성 총리와 보수당을 선택했다.
1979년 총리가 된 대처는 감세와 민영화, 노조와의 전쟁을 한치 양보없이 밀고 나갔다. 특히 ‘아서왕’ 아서 스카길이 이끄는 석탄노조와 1년여 대치 끝에 항복을 받아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 대영제국의 자존심도 다시 세웠다. 이른바 대처리즘의 승리였다.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노동당이면서도 대처의 정책을 광범위하게 계승해 ‘대처의 아들’로 불렸을 정도다. 대처가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의 공통 롤모델로 대처를 꼽아 눈길을 끈다. 대처의 애국주의와 강력한 리더십이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대처와 박 대통령 모두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에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사실 박 대통령은 대영제국을 일군 엘리자베스 1세를 롤모델로 꼽고, 대처와 독일 메르켈 총리를 존경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대처의 말마따나 “요란하게 소리 지르는 것은 수탉이지만, 알을 낳는 것은 암탉”이다. 여성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대처는 1925년 중부 소도시 그랜섬에서 식료품점을 하는 부모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보듯 평생 ‘식료품집 딸(grocery daughter)’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주위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대처를 ‘한번도 소녀였던 적이 없는 소녀’로 기억한다.(박지향 ‘대처스타일’) ‘남에게 기대지 말라’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처는 훗날 개인의 문제를 모두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들에 맞서 “사회(society)? 그런 건 없습니다. 개인과 가정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대처 집권 이전 1970년대 영국은 이른바 영국병(病)에 찌든 의욕상실 환자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원조 복지국가가 경제난과 만성화된 파업, 고실업, 무거운 세금, 겹겹이 규제에 치여 속절없이 추락했다. 특히 1978년 ‘불만의 겨울’에는 공공노조 파업으로 거리마다 쓰레기가 쌓이고 죽은 사람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에 넌더리가 난 국민은 첫 여성 총리와 보수당을 선택했다.
1979년 총리가 된 대처는 감세와 민영화, 노조와의 전쟁을 한치 양보없이 밀고 나갔다. 특히 ‘아서왕’ 아서 스카길이 이끄는 석탄노조와 1년여 대치 끝에 항복을 받아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승리, 대영제국의 자존심도 다시 세웠다. 이른바 대처리즘의 승리였다.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노동당이면서도 대처의 정책을 광범위하게 계승해 ‘대처의 아들’로 불렸을 정도다. 대처가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의 공통 롤모델로 대처를 꼽아 눈길을 끈다. 대처의 애국주의와 강력한 리더십이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대처와 박 대통령 모두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에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사실 박 대통령은 대영제국을 일군 엘리자베스 1세를 롤모델로 꼽고, 대처와 독일 메르켈 총리를 존경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대처의 말마따나 “요란하게 소리 지르는 것은 수탉이지만, 알을 낳는 것은 암탉”이다. 여성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