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이지송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등이 잇달아 물러나면서 정부가 임면권을 가진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줄사표’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정부가 오는 6월 발표를 앞둔 공기업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공기업 CEO 교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압박하고 있어 남은 임기와 상관없이 상당수 CEO가 사표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사의를 표하고 재신임 과정을 거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CEO 중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어윤대 KB금융그룹 회장이다. 강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 등과 함께 금융권의 대표적 ‘친MB 인사’로 불려와서다. 금융권 일각에선 이 회장과 어 회장이 임기를 채우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3월까지 임기를 남겨둔 이 회장은 28일 오전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거취에 대해 “나중에 (말하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는 평소 지인들에게 “조직의 안정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CEO의 정해진 임기가 지켜지는 게 맞는 것 아니냐”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7월 임기 만료를 앞둔 어 회장도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강 회장 사퇴에 따른 거취 표명 의사를 밝히겠느냐’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금융공기업 CEO들은 대부분 마음을 비운 분위기다. 더 시간을 끌거나 눈치를 보며 버티면 체면을 구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7월까지 임기를 남겨 놓은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임면권자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 물러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임기가 많이 남아 있는 CEO들의 거취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서종대 주택금융공사 사장,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임기가 1년 넘게 남아 있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금융권 이외 공공기관장들의 거취 역시 아직 불분명한 상태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에너지 부문 기관장들은 사의를 표명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고 있다. 김문덕 한국서부발전 사장은 당장 내달 1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지만 연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과 정승일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모두 올 10월 임기가 끝난다. 두 CEO 모두 연임한 데다 현대 출신의 대표적 MB맨으로 꼽혀 임기를 채우는 데 연연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 사장은 “담담하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경영평가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절차가 있는데 언론에 자꾸 이름이 거론된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2008년 취임해 두 번 연임한 장도수 한국남동발전 사장은 올 11월 임기가 끝난다.

장창민/박신영/조미현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