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편 경사진 언덕 세트를 따라 하얀색 튀튀(뒤집힌 우산 모양의 짧은 치마가 특징인 발레리나 의상)를 입은 여성 무용수들이 한 명씩 등장해 아라베스크를 하면서 줄지어 내려온다. 아라베스크는 한쪽 다리로 중심을 잡고 다른 쪽 다리는 무릎을 편 채 90도 이상 뒤로 올리는 동작이다.

32명의 무용수가 세 걸음에 한 번씩 아라베스크 동작을 반복하며 무대에 8명씩 4열 횡대로 자리 잡을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맨 처음 등장한 무용수는 아라베스크를 46번이나 한다. 단순 동작의 반복이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어여쁜 처녀 망령’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펼치는 아라베스크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황홀하다.

서울 서초동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펼쳐진 발레 ‘라 바야데르’ 중 3막 ‘망령들의 왕국’ 군무 장면이다. 국립발레단원들은 내달 9~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라 바야데르’ 공연을 앞두고 연습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 작품의 3막 군무는 ‘백조의 호수’ 2막에서 24마리 백조들이 추는 춤, ‘지젤’ 2막에서 요정 윌리들이 추는 춤과 함께 ‘발레 블랑(백색 발레)’의 3대 군무로 꼽힌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은 “지난 1월 초부터 매일 두 시간씩 군무를 연습하고 있다”며 “손끝과 어깨의 높이, 시선의 각도까지 한 몸처럼 일치하는 최고의 군무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어로 ‘인도 사원의 무희’를 뜻하는 ‘라 바야데르’는 고대 인도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 공주 감자티 사이의 뒤엉킨 사랑과 배신, 복수, 용서를 그린다.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로 1877년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됐다. 화려한 무대 세트와 120여명의 무용수, 200여벌의 의상이 등장하는 대작으로 ‘발레 블록버스터’로 불린다.

국립발레단은 이 작품을 1995년 국내 초연 이후 18년 만에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 버전으로 올린다. 국립발레단의 올해 공연작 중 투자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무대다. 의상과 무대 디자인은 2011년 국립발레단 ‘지젤’ 공연에서 호평을 받았던 이탈리아 디자이너 루이자 스피나텔리가 맡았다.

이 작품에는 화려하면서도 고난도를 요구하는 춤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박슬기와 김기완이 시연한 감자티와 솔로르의 결혼식 장면 그랑 파드되(큰 2인무)도 그중 하나다. 박슬기는 남자 무용수들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비상하는 동작과 고난도의 푸에테(한쪽 다리를 들어 다른 편 다리를 휘감듯 하면서 몸을 32번 회전하는 동작)를 가뿐하게 해냈다. 이번 공연에서 감자티와 니키아를 번갈아 맡는 그는 “캐릭터가 상반된 두 역할을 소화해야 해 힘들지만 언제 또 할지 모르는 대작이어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며 “정형화된 발레 동작이 아닌 자연스러운 인도 무희의 손동작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들이 총출동한다. 니키아 역에 김지영 김리회 박슬기 이은원, 솔로르 역에 이동훈 정영재 이영철 김기완 등이 출연한다. 연주는 파벨 소로킨이 지휘하는 코리아심포니가 맡는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