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이렇게 수사하다간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받고 큰코다칠 겁니다.”

‘성접대 동영상’ 의혹에 연루된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사퇴한 다음날인 지난 22일, 한 부장검사는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고위층 성접대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흘려 수사 과정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일 한 언론사가 성접대를 받은 의혹이 있다며 실명을 기사화하자 다음날 “모두 사실이 아니지만 이름과 관직이 불미스럽게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막중한 소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한다”며 사퇴했다.

이번 성접대 의혹 사건에서 수사 진행 상황이 실시간으로 알려지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 관행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검사 출신인 현직 차관이 취임 8일 만에 사퇴하는 유례없는 일이 발생하면서 검찰의 불만은 극에 달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해서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의 이런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피의사실 유포 관행은 검·경이 서로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경찰은 이번 건을 비롯해 탤런트 박시후 씨 성폭행 의혹 사건 등에서 수사 내용을 실시간 중계하고 있고, 검찰 수사 사건에서도 피의 사실이 허다하게 새어 나온다. 의정부지검이 수사 중인 프로농구 강동희 감독의 승부조작 사건에서도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검찰이 수사로 확인한 승부조작 경기와 날짜 등이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나오기도 했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최근 무죄를 선고하면서 검찰은 또 한 번 어깨가 무거워지게 됐다.

형법 126조 피의사실공표죄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알권리에 해당하는 경우 처벌받지 않는다는 모호한 기준 때문에 지금까지는 처벌된 사례가 거의 없다. 피의사실 공표를 처벌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세우는 일이 시급한 이유다.

정소람 지식사회부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