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던 이잠 시인(사진)이 첫 시집 《해변의 개》(작가세계)를 발표했다. 등단 후 첫 시집을 내기까지 17년이 걸렸다. “한때는 시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어느 때는 ‘사는 게 먼저’라고 되뇌며 생업에 몰입한 적도 있었지만, 마음을 돌리고 돌려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시를 쓰지 않은 동안에도 그가 내내 시인이었다는 건 수록된 시에서 느낄 수 있다.

‘내륙의 밤에 여름비 내리고/심장은 네가 머물렀던 시간을 더듬는다/(…)/너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기 위하여/너에 관한 기억을 순순히 지운다/허나 내가 육체와 마음의 길을/다 헤맨다 해도/한 줄도 너를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그래서 나는 너를 그토록 사랑하는지도/그리움이라는 형벌을 받으며/황홀에 떠는지도’(‘시 쓰는 밤’ 부분)

17년의 열망을 분출하듯 그의 시에는 팽팽한 긴장과 뜨거움이 묻어 있다. 지나간 시간과 그것을 관통하는 고독을 오랜 시간 벼려온 듯하다.

‘잘 둔다고 둔 것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새끼염소를 끌어안고 찍은 어릴 적 흑백사진, 공구함 속에 들어앉은 열쇠 꾸러미들의 출처, 기억의 단층들…/오래 전에 쓴 시를 읽는다/(…)/차마 못 볼 꼴 본 듯 역겨워하며 오랜 친구와 헤어졌다/함께 저지른 청춘의 밤들을 뒤로한 채/불구덩이를 한 발 한 발 밟으며 떠나왔다’(‘그날 이후’ 부분)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