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편' 영어판도 한류 타고 외국인에게 인기
1981년 소년한국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이래 33년 동안 독자들과 만나온 《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가 제15권 ‘에스파냐 편’을 끝으로 완간됐다. 이 시리즈는 1987년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의 유럽 6개국 편을 단행본으로 낸 이래 일본 한국 미국 중국을 거쳐 에스파냐에 도착했다. 완간 기념 간담회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1975년 독일에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당시 국내에서는 우리 역사를 쉬쉬했죠. 현대사가 암담했으니까요. 그런데 독일은 유대인 수백만명을 죽인 아우슈비츠를 그대로 남겨뒀어요. 그걸 보고 역사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 숨쉬는 거라는 걸 깨달았죠.”
《먼나라 이웃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이 교수는 이 시리즈를 그린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역사를 글이 아닌 만화의 틀에 담은 건 자유로운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역사를 만화로 그리는 건 누구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이어서 콘티 짜기부터 그리기까지 쭉 혼자 다 하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권으로 다룬 에스파냐(스페인)는 아메리카대륙에 진출한 최초의 유럽 국가이자, 무적함대 아르마나를 앞세워 대영제국보다 200년이나 먼저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한 초강대국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영토 확장과 독선적이고 폐쇄적인 문화정책으로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고, 오랜 독재 시절과 국민의 이념 분쟁까지 더해져 긴 암흑기를 보냈던 나라다.
이 교수는 “초기에 다뤘던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 6개국의 역사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에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았는데 유럽 역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에스파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아 중요한 연결 고리가 빠진 셈이었다”고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에스파냐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에스파냐와 한국은 여러모로 닮았다. 36년간의 프랑코 독재 시절을 겪고 다시 일어선 점도 비슷하다. 그래서 에스파냐의 역사는 우리에게 더욱 가깝고 진한 공감을 안겨줄 거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다양한 세계를 지역별로 묶어 소개하는 《가로세로 세계사》시리즈에 집중할 계획. 글로벌 시대를 맞아 세계 방방곡곡을 보다 정확히 알려주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미국 일본 유럽 등 강대국 역사에 치우친 세계사적 관점의 서술인 데 비해 《가로세로 세계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국들의 역사를 다루는 게 특징. 이 교수는 “세계 역사는 복잡한 관계 속에 융합, 발전돼 왔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에서는 국가·인종·도시·대륙·지역 간 관계에서 나오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세계사적 흐름을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며 “《먼나라 이웃나라》가 그려놓은 거대한 세계지도 위에 세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세계사의 흐름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로세로 세계사》시리즈는 발칸반도와 동남아시아, 중동 등의 나라를 다룬 데 이어 인도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의 치열한 발전사를 그려낼 예정이다. 그는 또 “에스파냐 편에서 스페인이 몰락하는 데 순혈주의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행간에 담아내려 했다”며 “우리나라도 ‘외국인 혐오증’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7·8권인 ‘일본 편’ 출간 이후 9권으로 내놓았던 ‘우리나라 편’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입문서이자 교과서가 됐다. 한류 열풍을 타고 이 책을 찾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영어로 번역해 국내에 출간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김영사는 ‘우리나라 편’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 도서로 자리잡도록 할 계획이다. 이미 프랑스에선 번역 작업 중이고, 에스파냐, 독일 등으로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통상 국내 출간물은 에이전시를 통해 각국의 해당 출판사가 번역해 현지에서 출간하지만 ‘우리나라 편’은 김영사가 직접 번역, 출간해 완성품 형태로 공급할 예정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