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1만 번째 해외봉사단원인 박지은 씨(27)를 배웅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에는 대한민국 정부 파견 1호 해외봉사단원도 자리를 함께했다. KOICA 22년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풋프린팅 이벤트도 열렸다. ‘1호 해외봉사단원’ 타이틀의 주인공은 바로 윤장용 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KOVA) 이사장(사진)이다.

지난달 말 KOVA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한 윤 이사장을 최근 경기 고양시 대화동의 한 다방에서 만났다. KOICA와의 인연을 먼저 물었다. “특별할 게 없어요. 1990년에 유네스코에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처음 모집했는데, 취업 대신 스리랑카 봉사를 택한 거죠.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유행이었거든요.”

홍익대 전기제어공학과 83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한국유네스코학생회(KUSA) 활동을 하며 1989년 경기 이천시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유스캠프’에 참가하는 등 해외봉사 준비를 해 왔다. 해외봉사를 결심할 당시에 이미 한 대기업에 취직이 결정된 상태였으나 포기했다.

2년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1992년 귀국한 윤 이사장은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갔다. 이번엔 현지어를 구사하는 엔지니어로서였다. 3개월여의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생계문제. 세제 유통업에 뛰어들었으나 1998년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 집까지 경매에 넘어갔고, 이후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가족 생계를 챙겼다.

그는 ‘생활인’으로 살아가면서도 해외봉사와의 끈은 계속 유지했다고 했다. 1992년 1기 봉사단원 44명이 주축이 돼 ‘나눔과 섬김의 모임(나섬회)’을 결성했다. 1년에 한 기수씩 후배들이 늘어가면서 전시회를 여는 등 친목모임을 유지해 왔다. 그 나섬회가 현재 KOVA의 모태다.

1만 회원의 친목모임에서 대한민국 해외원조 사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KOVA. 올해부터 살림살이를 책임지게 된 윤 이사장에게 해외봉사의 의미를 물었다. “봉사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봅니다. 후배들한테도 하는 말이지만, 못사는 나라에 가서 우리 것을 가르치려고 해선 안 됩니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잘 살핀 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죠.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른 것이거든요. 저는 여기에 다문화 사회의 해법이 있다고 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