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발생한 전남 여수산단 내 대림산업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공장 폭발사고는 안전불감증이 부른 대형사고로 드러났다. 사고 원인과 관련해서는 폭발의 원인이 ‘분진’이냐 ‘가스’냐를 두고 대림산업 측과 작업을 수행한 협력업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경찰과 검찰은 15일 각각 수사본부(반장 여수경찰서장)와 전담수사팀(부장검사 등 17명)을 꾸려 사고 원인조사에 들어갔다.

○‘가스냐 분진이냐’에 따라 책임 달라져

가스냐 분진이냐…여수 폭발 '네 탓 공방'
작업근로자 6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은 이번 참사는 대림산업 여수공장 폴리에틸렌 원료를 저장하는 사일로(저장탑) 보수작업 중 용접불꽃이 사일로 내 원인 모를 물질에 점화돼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회사 측은 15일 브리핑에서 “고밀도 폴리에틸렌의 중간제품인 분말 상태의 플러프를 저장하는 사일로 내부에서 한계밀도까지 팽창한 분진이 불꽃에 점화되면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김만중 대림산업 생산기술파트 상무는 “작업 전 근무규정에 따라 잔존가스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라며 “분말 형태로 저장한 고밀도 폴리에틸렌을 완전히 빼냈다고 하지만 조밀한 가루들이 내부 공기 중에 남아 있다면 작은 불꽃에도 폭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 측은 “조합원들이 회사가 사일로 내 잔류가스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일정에 쫓겨 작업을 시키는 바람에 사고가 났다”고 반박했다. 폭발의 원인이 ‘가스’일 경우 작업 전 잔류가스 제거 의무가 있는 회사 측에, ‘분진’이 원인이면 작업을 수행한 유한기술 측에 책임소재가 있다. 정 서장은 “사고 당시 폐쇄회로 TV(CCTV)를 확보해 분석하는 한편 작업 근로자와 회사 관계자들을 불러 사고 경위와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위기관리시스템 부재가 가져온 인재

여수공장은 9개월 전에도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해 6월28일 고밀도 폴리에틸렌 공장 내 사일로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지름 5m에 높이 30m 크기의 사일로 2개가 파손되고 폴리에틸렌 5t가량이 외부로 유출됐다. 또 사고가 발생한 시설은 25년 된 노후시설로 내구연한은 5년가량 남아 있지만 보다 세밀한 관리점검이 필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작업자들의 안전의식 소홀도 대형 참사의 원인으로 꼽혔다. 당시 사일로 내 통로를 내기 위해 용접작업을 했던 유한기술 측 작업자들 대부분은 일당 13만~15만원의 1개월 단기 계약직들로 위험물질이 많은 석유화학공장 내에서 야간작업을 수행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날 브리핑장에 나온 유한기술 직원 이재석 씨는 “현장에 투입된 직원들이 안전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대응도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폭발사고 후 40분이 지나서야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희생자 구호책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작업자들이 사고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사고 수습에 최선

사고 후 대림산업은 박찬조 대표가 서울에서 내려와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대림산업은 이날 공식 사과문을 내고 “부상자 치료와 유가족을 위한 법적·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해 최대한 빠르게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남도는 대책회의를 갖고 장례절차 보상협의 등을 마련하는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여수=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