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가정용 전기 사용량에 따라 구간을 나누어 더 많은 사용량의 구간에 더 많은 전기료를 매기는 제도다. 개편안은 적은 사용량 구간의 전기료를 올리고 많은 사용량 구간의 전기료는 낮춰 누진적 성격을 줄이는 방향이라고 한다.

전기요금에 누진제가 도입된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전기소비를 억제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가정용 전기 사용에 한해 많이 쓸수록 체증적인 요금을 부과하는 누진제가 등장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전기요금 누진제가 소득재분배 정책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즉 저소득층 가구는 전기를 적게 쓰고 고소득층 가구는 전기를 많이 쓴다는 가정 아래 적은 사용량 구간에는 공급원가보다 싼 전기료를 매기고 많은 사용량 구간에는 비싼 전기료를 매긴 것이다.

이런 배경이 있으나 현재의 상황은 이도 저도 아니게 돼 버렸다. 우선 주요 사용구간의 전기 요금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전기 소비를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누진제 자체보다는 제도 운영의 문제이지만 결과적으로 누진제가 상황을 악화시킨 셈이다. 재화의 가격은 소비자 입장에서 얼마나 소비할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인데, 전기요금이 공급원가보다 싸니 심각한 전기 수급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년간 여름과 겨울에 반복된 블랙아웃 우려는 그 부작용의 일부일 뿐이다.

또한 최근에는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비싼 가전제품일수록 전력소비효율이 높아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 중에 저소득층 가구의 비중은 높지 않다고 한다. 낮은 전기료 혜택을 저소득층이 아닌 가구들이 더 많이 누리게 됐다는 뜻이다. 반대로 식구가 많아 누진제 부담을 심각하게 느끼는 저소득층 가구도 많을 것이다. 사실 소득재분배를 위해서라면 누가 혜택을 받는지 모호한 전기요금 누진제보다는 저소득층 가구에 지원금을 늘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지금부터라도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를 축소하거나 없애고 원가를 반영해 계절별, 시간대별로 차별적인 요금제를 구축하되 저소득층 가구에 대해서는 충격을 완화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낫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것 같다. 누진제가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 사용량은 전체 전기 사용량의 약 15%에 불과하다. 반면 제조업체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비중이 50%, 마트 등 상가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일반용 비중이 20%가 넘는데, 용도에 관계없이 전기요금이 공급원가보다 싸다. 그렇다면 가정용만 손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 때문에 모두들 전기를 너무 쉽게, 많이 써왔다. 물론 전기요금 인상만으로 전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기요금 인상을 빼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물가가 걱정이지만, 전기요금이 오르면 전력산업의 비효율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아져 효율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 기대할 것은 그뿐인 것 같다.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 sejinmin@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