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환급이나 탈세 등으로 새는 부가가치세가 연간 8조원에 육박한다는 국책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정부가 부가세만 제대로 걷어도 복지 확충에 필요한 재원의 상당 부분을 증세 없이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보고서를 낸 국책연구원이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원장으로 있던 조세연구원이란 점에서 실제 정부의 세수 확대 방안에 어떻게 반영될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재진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증세없는 세수확보 방안’ 토론회에서 부가세 손실액 추정치를 공개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부가세 제도가 발달한 유럽연합(EU) 선진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부가세 갭(gap)’ 분석을 통해서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정부가 걷을 수 있는 ‘이론적 부가세 징수액’은 매년 63조1000억원(2011년 기준)에 달하지만 실제 부가세 징수액은 51조9000억원에 그친다.

11조2000억원의 ‘부가세 갭’이 생긴 것이다. 이 중 3조4000억원은 탈세로 보기 어렵다.

국세청이 사업체의 부도나 폐업 등으로 부가세 징수가 힘들다고 판단해 결손처리했거나 체납 정리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나머지 7조8000억원은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사정이 다르다.

김 연구위원은 “이는 부정 환급이나 탈루 등 각종 조세 회피로 인한 세수 손실에 해당한다”며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부가세 징수가 허술한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 주요 국세 가운데 부가세 체납률이 유독 높다. 국세청의 결정세액 대비 체납비율은 부가세가 11.3%로 소득세(9.0%), 법인세(2.6%)보다 높다. 체납액 중 결손처리한 비율도 4.6%(2009년 기준)로 영국(0.9%), 독일(0.6%), 프랑스(1.2%)의 4~5배에 달한다.

김 연구위원은 “부가세는 소비자가 물건을 살 때 사업체에 미리 지불한 뒤 사업체가 6개월 내에 국세청에 신고·납부하는 세금인데도 체납률이 높다는 것은 문제”라며 “부가세가 새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소비자가 대형마트에서 신용카드로 1만원짜리 물건을 사면 지금은 대형마트가 신용카드 업체로부터 1만원을 받은 뒤 이 중 1000원(물건 값의 10%)을 부가세로 내야 한다. 이를 신용카드 업체가 대형마트에 9000원을 보내고 국세청에 1000원을 보내는 식으로 바꾸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처럼 부가세 납부 제도를 바꾸면 세수 증대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비과세·감면 정비 필요성도 논의됐다. 김학수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비과세·감면은 한 해 30조원 규모이며, 올해 말부터 2015년 말까지 일몰(시한 종료)을 맞는 비과세·감면 항목은 총 151개로 분석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과세·감면에 대해 “일몰이 되면 원칙적으로 무조건 폐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김학수 연구위원은 그러나 “모두 폐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임기 중 10% 정도 감축 목표를 잡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