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레이지(road rage). 운전대만 잡으면 화를 잘 내고 다른 운전자들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폭언과 폭행까지 서슴지 않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최근엔 고속도로에서 끼어들기를 했다고 상대방 운전자를 때리고 가위로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동승한 여성에게까지 폭언과 협박을 하던 ‘망나니’ 운전자가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과정보다 결과 중시하는 사회

한국의 로드 레이지는 국제사회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한번이라도 한국에서 운전 해본 외국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한국인은 왜 유독 차만 몰면 돌변할까. 왜 그토록 사소한 일에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처럼 분노할까. 로드 레이지를 한탄하는 목소리는 많아도 정작 그 원인에 대해 시원한 설명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재미있는 해석 하나를 발견했다. 고병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교통법규를 다 지키고 천천히 운전하는 사람보다 법규를 다 어기고 무리한 끼어들기와 과속으로 빨리 운전하는 사람을 능력있는 운전자로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자신이 유능하다는 걸 과시하고 싶고 갈 길도 바쁜데 다른 차가 얼쩡대니 짜증이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는 것이다. 꽤 설득력 있는 얘기다. 엄청난 과속으로 차를 몰아 남들보다 빨리 약속장소에 도착했다는 걸 자랑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일리 있는 분석이다.

재미있는 건 이런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운전에만 국한된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가장 부러움을 사는 이들은 힘있고 ‘빽’있는 사람들이다. “나 누군데…”로 시작하는 전화 몇 통이면 거의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소위 ‘끗발’ 있는 부류들이다. 사소한 주차위반부터 시작해 각종 민원에서 군 입대나 세금처럼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만사 OK’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법이나 절차 따위는 우습게 알고 수시로 불법 편법으로 법규를 어기거나 뛰어 넘는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비난받기는커녕 모두가 우러른다. 본인도 죄책감은 고사하고 어깨를 으쓱대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일쑤다. 제대로 세금 내고 군대 가고 투기 안하고, 법이란 법은 다 지키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는 바보 취급받기 십상이다. 초법적인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해야 능력 있는 사람, 출세한 사람으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했다. 경찰을 비웃으며 신호위반과 과속을 밥먹듯하는 운전자와, 이를 보고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로드 레이지 운전문화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청렴한 공직후보 드물 수밖에

박근혜 정부의 각료 구성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문제도 있지만 청문회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직후보자들의 각종 비리 의혹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 탈세, 군 면제, 위장전입 등 이명박 정부 때와 주메뉴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어떻게 공직후보자란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럴 수 있느냐”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들이 거기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과속으로 달려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준법보다는 앞서가는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지킬 것 다 지켰다면 아마도 현 위치에 있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후보 지명을 전후해 아무렇지도 않게 밀린 세금을 내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인정하기 싫지만 슬픈, 그리고 고쳐 나가야 할 우리의 자화상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