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어느 날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에 ‘엄마’라고 뜬 걸 보면서 나는 귀찮은 듯 전화를 받았다. “왜? 엄마”, “어….” 나지막이 신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엄마, 엄마” 전화가 끊어졌다. 놀란 나는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에 속도 경고 신호음이 몇 번이나 울렸다. 정신없이 경고도 무시한 채 달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인기척이 없었다. 또다시 ‘쾅쾅쾅’ 하고 두드리니 그제서야 현관문이 열렸다. 노랗게 질린 어머니가 배를 움켜잡고 땀범벅인 채 문을 열었다.

서둘러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모셨다. 여러 가지 불길한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큰 병이면 어쩌지? 아직 효도도 못해 드렸는데….’ 눈시울이 붉어지며 혼자 드라마를 쓰고 있었다. 급하게 의사의 진단이 끝났다. 결석으로 인한 통증이었다. 요도에 돌 같은 게 생겨 혈관을 막고 있었다.

어머니와 의사의 대화를 들어보니 꽤 오래 앓은 것 같았다. 큰 병은 아니라니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며칠 입원하면서 ‘충격파쇄술’이란 수술을 통해 결석을 깨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 돈이 드는 건 아니지만 당시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웠다. 어머니 건강보다 수술비가 먼저 걱정일 정도였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탓에 나는 용돈도 빠듯한 형편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큰 아들인지라 “엄마, 수술비는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기만 해”라며 허세를 부렸다. 해결책은 없었다.

입원 이틀째가 되자 어머니는 과거 친한 설계사의 부탁으로 건강보험에 들어 놓은 게 있다고 하셨다. 보험사에 좀 알아보라는 거였다. 당시에는 사정이 어려워 대부분의 보험계약을 해지한 상태여서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수술비 보장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죽을 병에 걸려야만 보험금을 타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술비 보장이 가능하다는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퇴원과 동시에 설계사를 통해 서류를 전달했더니 다음날 보험금이 들어왔다. 수술비를 내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한 액수였다. 남은 돈으로 어머니가 그토록 사고 싶어했던 김치냉장고를 장만했다. 수술비와 요양비, 그리고 김치냉장고까지….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육체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회복이 매우 빨랐다.

세월이 흘러 나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고 있다. 본가에 가서 김치냉장고를 볼 때면 늘 그때 얘기를 한다. 내가 죽거나 심각한 병에 걸려야 타는 걸로 알았던 보험금. 누군가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들어줬던 보험.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보험이 내게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줬다. 어머니가 김치냉장고를 산 며칠 뒤 나도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이 글은 2012년 삼성생명이 주최한 보험수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