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엘사 포르네로 당시 이탈리아 복지부 장관이 기자들 앞에 섰다. “우리는 국민연금제도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고….” 포르네로 장관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국민의 희생을 요구할 것입니다”라고 끝내 말하지 못했다. 현지 언론은 “연금을 줄인다는 건 포르네로 장관에게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2011년 기준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에서 연금지출이 차지한 비중은 약 14%에 달했다. 약 8.8%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연금지출 평균과 약 7%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훨씬 높다.

이탈리아의 전체 공공지출 약 1조유로 중 4분의 1인 2500억유로 정도가 연금에 쓰인다. 현재 상당수의 근로소득자들은 은퇴하면 죽을 때까지 퇴직 전 연봉의 60%를 받을 수 있다. 그나마도 지난 30년간 몇 차례 개혁을 통해 많이 줄인 것이다. 이탈리아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약 20%에 이른다. 한국의 약 두 배다. 이탈리아가 재정위기에 빠진 건 우연이 아니다.

이런 연금제도를 뜯어고치려고 했던 인물이 마리오 몬티 전 총리다. 그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2011년 중도하차하자 선거를 거치지 않고 총리직에 올랐다. 유권자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정치인을 배제하고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 중심으로 내각을 꾸렸다. 그리고 연금을 비롯한 이탈리아의 방만한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수술하려고 했다. 금융시장은 “몬티가 이탈리아를 구할 것”이라며 환호했다.

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날 것 같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자신들의 ‘사탕(복지)’을 빼앗으려는 몬티를 외면했다. 지난 24~25일 총선거에서 몬티의 중도연합이 얻은 득표율은 10%에 불과했다. “주당 근로시간 20시간으로 단축, 모든 어린이에게 태블릿PC 지급” 등 인기영합주의적 공약을 내건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정당 ‘오성운동’ 득표율(2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과다하게 늘린 복지를 다시 줄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탈리아 총선 결과는 잘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복지 확대’를 밀어붙이기 전에 이탈리아의 교훈을 곱씹어 봤으면 한다.

남윤선 국제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