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다양한 취미가 있다. 오래된 한시를 한 자 한 자 음미하며 선조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자전거와 가방 하나 챙겨 몇 시간씩 도로를 내달릴 수도 있다. 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신 후 하산하는 길에 막걸리와 파전으로 거나하게 취해 오전의 등산을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

취미 하나쯤 갖는 건 나쁘지 않다. ‘취미가 삶의 활력소’라는 뻔한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생소한 취미활동 하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지난 23일 전남 영암의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으로 향했다. 오전 9시에 이미 상설 경기장 앞은 차들로 가득했다. 어림잡아 100여대는 족히 넘을 듯했다. 이 차들은 이날 서킷을 달리기 위해 모였다.

서킷을 달리기 위해선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서킷의 규칙과 코스 등을 소개한 후 필기 및 실기시험을 치러 합격자에게 발급한다. 서킷은 제한속도가 없다. 직선코스에서는 차량의 성능에 따라 최대 시속 320㎞까지도 낼 수 있다. 말 그대로 속도 무제한의 공간이기 때문에 안전교육은 필수다.

필기시험은 오전에 진행되는 이론 교육을 성실하게 듣고 외우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다. 체커기, 오렌지볼, 적색기 등 깃발의 색상이 보내는 신호가 무엇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핵심이다.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곧바로 실기시험이 진행된다. 자신의 차량을 가지고 서킷에 들어가 코스를 달리며 깃발의 신호에 따라 서행, 운행중지, 장애물 회피 등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물론 서킷에 들어갈 땐 헬멧과 장갑이 필수다. 안전을 위해서다. 주최 측에서는 드라이빙 슈트와 슈즈까지 챙겨 입을 것을 권장한다. 실기시험까지 합격하면 라이선스가 발급된다. 발급한 날로부터 1년간 유효하다. 라이선스가 있으면 서킷을 이용할 수 있다.

점심식사 후 오후에는 스포츠 주행이 이어졌다. 말 그대로 자신의 차로 서킷을 마음껏 달리는 순서다. 배기량에 따라 A, B, C조로 나눠 진행되며 조마다 2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 25분이라는 말을 듣고 ‘너무 짧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개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25분도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25분씩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므로 시간은 충분하다.

서킷을 달리는 맛은 짜릿하다. 도로의 좌우로 차를 붙여가며 코너를 적절하게 공략하고 직진 코스에서는 차량의 성능을 최대한 뽑아낸다. 성능이 높은 차와 보통인 차, 실력자와 초보자 등 모두들 차이는 있지만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속도와 코너링으로 달리면서 즐기는 데 문제 될 것은 없다. 한 랩, 두 랩 서킷을 많이 돌아볼수록 익숙해지면서 보다 과감하게 차를 몰아보는 것도 좋다. 차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되면 일반도로에서 오히려 안전운전을 하게 된다고 한다. 차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엔진 배기량이 3000㏄ 이상인 차들로 구성된 A조는 명차의 향연장이다. 포르쉐 GT3RS, BMW M3, 닛산 GT-R 등 일반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스포츠카들이 서킷을 질주한다. 관련 차 동호회 혹은 아마추어팀들이 단체로 내려와 서킷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주행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서킷을 가득 메우는 배기음은 지난 포뮬러원(F1) 경기를 떠오르게 한다.

내 차가 포르쉐, BMW가 아니라고 주눅들 필요 없다. 제네시스 쿠페는 물론 베르나, 아반떼, 프라이드 등 일반 국산 양산차들이 즐비하다. 물론 튜닝을 한 차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차들도 유유히 서킷을 돌아다닌다. 즐기는 데 차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닌 것이다.

서킷 주행은 어느새 마니아들의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주최 측에서 선착순 신청을 받으면 금세 신청자들이 한아름 들어온다. 일반 사람들도 마음은 있지만 막상 방법을 몰라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가격은 라이선스 발급이 10만원, 스포츠 주행이 하루에 7만원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해 볼 만한 취미생활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