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한, 16년 홈플러스 경영 손뗀다
국내 유통업계 장수 최고경영자(CEO)인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67)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 회장이 1997년 홈플러스의 전신인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에 취임한 지 16년 만이다. CEO가 교체되는 것은 홈플러스 창사 이래 처음이다.

홈플러스는 이 회장이 창사기념일인 오는 5월15일부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다고 19일 발표했다. 이 회장은 CEO 은퇴 후에도 홈플러스 회장직과 사회공헌활동을 전담하는 e파란재단 이사장직은 유지한다. 테스코홈플러스아카데미 회장 겸 석좌교수와 CEO 경영자문역도 맡는다.

이 회장은 1970년 삼성그룹 공채 11기로 입사해 회장 비서실 기획마케팅팀장, 신경영추진팀장 겸 보좌역 부사장을 거쳐 19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1999년 영국 테스코와 삼성의 합작회사로 홈플러스를 창립,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테스코는 2011년 3월 삼성 지분을 모두 인수, 지금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그가 CEO로 재임한 16년간 홈플러스는 연 매출 12조원의 국내 업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대형마트 점당 매출 1위, 매장 면적당 매출 1위, 업계 최단기 매출 1조원 돌파 등 각종 진기록도 세웠다. 1999년 주류를 이뤘던 창고형 할인점에서 탈피, 상품 진열 방식을 고급스럽게 바꾼 ‘가치점(value store)’ 개념을 도입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 회장은 한국체인스토어협회장으로서 정부의 유통업 규제에 맞서 업계를 대변하는 역할도 했다. 그는 지난해 2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겉은 시장경제를 유지하지만 안을 잘라보면 빨갛다”는 이른바 ‘수박경제론’을 주장하며 정부의 대형마트 영업제한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업계 일부에서는 최근 홈플러스 실적이 부진해 대주주인 테스코가 이 회장을 경질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홈플러스는 경기 침체와 영업 규제 영향으로 지난해 매출이 4.4% 감소했다. 이에 대해 테스코 본사는 이날 “이 회장이 홈플러스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홈플러스 회장과 테스코홈플러스아카데미 회장직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 후임으로는 테스코말레이시아법인 대표인 도성환 사장(56)이 내정됐다. 도 사장은 1981년 삼성물산에 입사, 홈플러스 1호 점포인 대구점 초대 점장을 지냈다. 점포 운영, 물류, 마케팅, 인사, 재무 분야 임원을 두루 거쳐 2011년 8월 테스코말레이시아법인 대표를 맡았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