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건설사 지원문제를 놓고 채권단 간 갈등을 빚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건설회사에 대한 대출금 상환 및 신규 자금 지원 등을 놓고 다투고 있어서다. 채권단 간 법적 분쟁도 늘고 있는 추세다. 정권교체기에 금융감독당국의 리더십이 실종되면서 기업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사 채권단 간 갈등 확산

19일 금융당국 및 은행권에 따르면 워크아웃 중인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농협·국민은행 등 98개 채권 금융회사들은 21일 긴급 회의를 열기로 했다. 우리은행이 최근 금호산업의 예금계좌 가압류에 들어간 것에 대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본지 2월19일자 A1,31면 참조

우리은행은 예금 계좌 가압류를 풀기 위해선 금호산업의 베트남 법인인 금호아시아나플라자사이공(KAPS)에 대한 대출금 중 50%인 300억원을 상환하거나 KAPS 주식을 담보로 제공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KAPS에 대한 대출금이 채권단 협약채권이 아닌 별도의 비협약채권이어서 상환 및 담보 제공 요구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산은 등 채권단은 우선 금융당국에 우리은행의 대출금이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대상(협약채권)인지 여부에 대한 유권 해석을 공식 의뢰하기로 했다. 또 우리은행을 상대로 협약채권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건설사들이 잇달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은행과 보증기관 등 채권단 간 법적 다툼도 늘고 있다. 우리·산업·농협·국민 등 남광토건 채권은행들은 조만간 채권단에 속해 있던 무역보험공사와 서울보증보험을 상대로 손실분담 청구 소송을 낼 계획이다.

○갈등 외면하는 금융당국

채권단 간 갈등으로 건설사들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이 겉돌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권 교체기를 맞아 금융당국이 아예 건설사 구조조정을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시공능력평가 13위의 쌍용건설이 심각한 자금난에 내몰린 게 대표적 사례다.

자산관리공사(캠코)는 22일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용 시한이 종료됨에 따라 정부(금융위원회)에 쌍용건설 지분(38.75%)을 넘긴다. 문제는 금융위가 쌍용건설 지분을 하나·산업·신한은행 등 금융사에 떠넘기려 하고 있는 점이다. 채권단이 손을 들면 22일 이후엔 쌍용건설이 언제라도 법정관리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채권은행들은 “정권 말기에 금융위가 쌍용건설 매각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발을 빼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 쌍용건설 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는 금융위와 그 산하기관인 캠코는 아예 손을 놓은 상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사의를 표명했으며 금융위 아래 있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정권 교체기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쌍용건설을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B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가 얼마 전 건설사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등 생색을 낸 뒤, 정작 지분을 갖고 있는 쌍용건설 처리에서 손을 떼는 건 정권 말기에 공직사회의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창민/류시훈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