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스로를 거지로 만들 아베노믹스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은 출범과 함께 물가목표 2%를 달성할 때까지 돈을 무제한 풀겠다고 밝혔다.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고 경제성장을 꾀하겠다는 목적이다. 한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자국의 통화가치 상승으로 수출에 타격을 입고 있는 나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일본의 엔저정책을 공식 지지하고 나서면서 환율전쟁을 둘러싼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는 양상이다. 문제는 아베 내각의 이번 양적완화 정책도 일본 경제의 기초여건을 더욱 악화시키고 장기침체를 연장시키는 또 하나의 잘못된 정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년간 장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 정책을 썼지만 물가하락과 엔화가치 상승을 막는 데 실패했다. 금융·재정지원 정책으로 부실기업의 수명을 연장함으로써 부동산 버블 이후 쌓여온 과오투자와 과잉투자를 바로잡을 기회를 잃은 결과다. 일본은 투자는 물론 소비도 쉽게 살아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개인금융자산의 약 50%를 소비성향이 낮은 60세 이상이 갖고 있다. 디플레이션과 엔화강세로 영업수익률이 떨어진 일본 기업들은 생산 거점을 해외로 이전하고, 근로자에게는 임금삭감을, 협력업체에는 원가절감을 요구해 생산단가를 낮춰왔다. 이로 인해 근로소득이 감소하고 저금리에 따른 이자소득마저 줄면서 가계의 소비여력이 약화돼 왔다.

일본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경상수지마저 흔들리면서 일본은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본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남유럽과 달리 국가채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경상수지가 꾸준히 흑자를 기록한 덕분이다. 그러나 작년 무역수지는 약 7조엔 적자를 기록, 2년 연속 적자를 보였다. 수출둔화는 일본 기업의 수출경쟁력 약화라는 내부적 요인과 유럽의 재정위기, 중국의 성장률 둔화, 미국의 소비감소 등 대외여건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양적완화로 수출경쟁력은 회복할 수 있으나 대외여건은 크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큰 폭의 수출증가세는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 수입재화 가격을 끌어올려 무역수지만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해외에 엄청난 자산을 갖고 있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외국보유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낮은 글로벌 이자율로 수익도 줄어들면서 앞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저축률도 2%까지 떨어졌다. 무역수지 적자, 해외보유 자산수익 감소, 저축률 하락 등에 따라 일본 내 자금 여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해외 자금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기침체로 세수입이 줄어들면서 일본 정부는 재정지출의 절반을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일본 내 자금부족으로 국채를 해외에 내다 팔아야 하는데 수익률 인상이 불가피하다. 외국인 보유비율이 커질수록,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할 기미가 보일 때마다 국채가격이 급락하고 수익률이 급등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일본도 남유럽과 같은 국가채무 악순환 함정에 빠져 이웃 나라보다 먼저 거지가 될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지금이라도 양적완화 정책을 중단하고 강력한 구조조정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 수출기업에는 비상이 걸려 있다. 자연히 정부에 환율하락을 막을 대책을 내놓으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정부가 개입해도 환율 하락추세를 반전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개입은 환율하락을 막지 못한 채 엄청난 자본손실로 끝날 공산이 크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내수 활성화의 계기로 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과도한 세부담과 규제를 완화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현재 정부가 수출기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조경엽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glcho@ke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