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중곡동에 있는 중곡제일시장은 겉보기에 여느 재래시장과 다를 바 없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특별한 점이 눈에 띈다. 태블릿PC를 쓰는 아저씨, 아줌마 상인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유형근 태양기름집 사장은 손님에게 신용카드를 건네받자 태블릿PC 화면의 ‘참기름’ 항목을 눌렀다. 태블릿이 신용카드 결제기와 무선으로 연결돼 있어 결제와 동시에 매출 데이터가 모두 태블릿에 저장됐다. 다른 메뉴를 누르자 날짜별 매출 추이가 그래프로 뜨고, 고객 숫자가 신규·단골·충성·이탈로 분류돼 나타났다.

박태신 중곡제일시장협동조합 이사장은 “이전에는 매출이 떨어지면 왜 떨어지는지 모르고 경기나 날씨, 대형마트 등 외부요인 탓으로만 돌렸다”며 “지금은 자기 점포의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돼 스스로 개선하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0년 세워진 중곡제일시장에 정보통신기술(ICT)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작년 9월 SK텔레콤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추진한 ‘전통시장 혁신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정되면서다. SK텔레콤은 태블릿을 기반으로 매출·고객 관리를 도와주는 ‘마이샵’을 제공했고 시장 전체를 와이파이존으로 만들었다.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11번가’는 중곡제일시장 공동 브랜드 참기름인 ‘아리청정’을 입점시켜 월 판매량이 5세트에서 322세트로 급증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동안 정부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설 현대화와 PC 보급, 정보화 교육 등에 나섰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7년 만들어진 재래시장 전용 온라인 쇼핑몰 ‘에브리마켓’은 3년 만에 폐쇄됐다. 2010년 옥션과 G마켓을 위탁운영사업자로 선정해 재래시장 상품의 온라인 판매를 부추겼지만 매출이 많지 않아 2년 만에 계약이 해지됐다.

재래시장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중곡제일시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8일 이곳을 찾아 “창조경제의 좋은 사례”라고 말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재래시장 상인들이 IT 기기를 쉽게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