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사진작가 황규태 씨는 리얼리즘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1970년대 이중노출, 포토몽타주 등 실험사진을 시도하고 필름을 태우기까지 하면서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요즘도 첨단 테크놀로지를 적극 활용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영원한 아방가르드’를 자처하는 그가 이번에는 꽃 작업을 들고 화단을 빛내고 있다.

서울 회현동 신세계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는 ‘꽃들의 외출’이란 제목으로 아날로그 카메라와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해 작업한 대형 꽃 사진 19점을 내놓았다.
전시장에 걸린 꽃 사진은 강렬하면서도 연약하고 텅 빈 듯하면서도 꽉 채워져 있다. 목련 꽃송이가 하늘을 떠도는 듯한 사진, 탁자 위에 시든 꽃을 배치한 사진, 활짝 피어난 꽃과 낙엽을 함께 찍은 사진 등 묵직한 내공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다.

그는 “꽃 사진을 통해 가치(생화)와 위선(조화)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현대인의 원초적 감성을 아우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을 소재로 한 것은 새로울 것도 없는데 굳이 꽃을 새 화두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정보와 사물, 현상들과 조우하면서 살아갑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그것들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지나치기 일쑤지요. 무엇이 진정한 가치이고 행복인지를 보여주고 싶어 꽃을 찍었습니다.”

그는 “꽃 사진은 일상에서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성찰하는 데 좋은 소재”라고 덧붙였다. “요즘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의 구별이 모호할 때가 많아요.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아름답기도 하고요. 현대인들은 즉흥적인 쾌락, 빠른 템포를 찾다 보니 가짜를 진짜로 보고 즐기는 것 같아요. 꽃은 잃어버린 진짜를 환기시키는 수단이고, 사진은 그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 이어진다. 15일에는 ‘가짜가 아름답다’라는 타이틀로 작가와 문화평론가 조우석 씨의 대담이 신세계아카데미(신세계백화점 본점 14층)에서 진행된다. (02)310-19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