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제책업체에 기계납품
시간당 1만5000권 정렬
생산성 높아 주문 잇따라
경기 파주에 있는 소기업 진일에스앤피(사장 이순일·60)가 일본 최대 제책업체에 정밀인쇄기계를 수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세계 최고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 및 유럽 업체를 제치고 따낸 성과다. 장애인을 포함, 종업원이 14명인 이 회사의 파주 능안리공장은 내비게이션으로도 제대로 찾지 못할 정도로 외진 곳이다. 임차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공장 옆 컨테이너가 사무실이다. 사무직원 2명이 조립업무를 함께할 정도로 인력도 부족하다.
이런 소기업이 일본 최대 제책업체 니포소고세이혼(日寶綜合製本)의 주공장인 오카야마공장에 정합기(Gatherer·인쇄용지 페이지순 정렬기계)를 지난달 납품해 업계에서 화제다.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쇄왕국이자 인쇄기계의 선진국인데 이 시장을 본격 개척한 것이다. 이번에 수출한 장비는 높이 1.6m, 길이 30m에 이르는 자동화설비로 인쇄된 종이를 페이지대로 가지런히 정렬하는 장비다. 대당 가격이 약 3억원에 이른다.
이순일 진일에스앤피 사장은 “1951년 문을 연 니포소고세이혼은 10여곳에 공장을 둔 일본 최대 제책업체”라며 “작년 초 사이타마공장에 작은 기계 1대를 시범 납품했는데 성능이 우수하다고 판단해 이번에 대형 정합기를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일에스앤피의 정합기는 △시간당 최대 책 1만5000권 분량의 인쇄된 용지를 페이지순으로 정렬하는 데다 △카메라로 인쇄 내용과 종이 두께를 촬영, 에러를 실시간 검증하고 △장비를 부분적으로 가동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진동과 소음도 작다. 이 사장은 “그동안 접지 정합 접착 재단 등으로 이어지는 인쇄후공정 중 정합기 성능이 다른 설비에 못 미쳐 병목현상을 빚곤 했는데 우리 기계 덕분에 책을 만드는 생산성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고 말했다.
진일에스앤피는 이 설비의 주요 부분을 특허 등록했다. 이 사장은 “일본에서 4대째 제책을 해온 시부야분센가쿠에 첫 납품한 것을 시작으로 니혼시코 이지마세이혼 등을 거쳐 이번에 최대 제책업체인 니포소고세이혼에도 납품함에 따라 앞으로 대일 수출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 시장 개척은 인쇄후처리설비 분야의 정상급 업체로 꼽히는 스위스 뮬러마티니가 맡고 있다. 뮬러마티니 제품과 진일에스앤피의 정합기를 연동해 쓸 경우 효율이 최대로 오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위해 뮬러마티니 본사의 기술영업담당인 슈바이처는 능안리공장을 10여차례 방문해 제품 성능을 점검했다. 그는 능안리공장을 찾을 때마다 “어떻게 이런 공장에서 이런 제품이 나올 수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사장은 외국계 무역업체에서 일하다가 정합기 국산화를 위해 48세인 2001년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2006년 고성능의 정합기를 국산화한 그는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중소기업 지원책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 것을 알기 위해 뛰어다닐 시간도 없었다”며 “집을 담보로 해 노후를 위해 준비해둔 땅도 팔아 사업자금을 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받고 있는 게 거의 유일한 혜택”이라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최근 엔화 환율이 급락하고 있지만 우리는 가격경쟁을 하는 제품이 아니어서 적정마진을 감안해 제값을 받고 파는 것을 비즈니스 원칙으로 삼는다”며 “앞으로 국내외 시장 공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파주=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