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임기 끝났다…연임은 회원사에 물어봐야"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7일 오전. 서울시청 앞 더플라자호텔 별관(그랜드볼룸)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정기 이사회가 열렸다. 재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전경련의 한 해 사업계획과 예산이 이날 결정된다.

그러나 재계 관심은 온통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의 입에 쏠렸다. 허 회장의 2년 임기는 이달 말 끝난다. 그가 연임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연임을 하지 않는다면 전경련은 차기 회장을 두고 어수선한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새 회장을 뽑는 정기총회(오는 21일)까지 고작 2주밖에 남지 않아서다.

○허창수 회장, 연임 고사

오전 11시30분 이사회 개최 시간에 맞춰 허 회장이 도착했다. 허 회장은 연임 여부를 묻는 질문에 “나는 사표를 냈다. 내 임기는 끝났다”고 답했다. ‘그럼 후임은 누가 하느냐’는 질문엔 “나가는 사람이 후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나.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했다. 사실상 고사(固辭)할 뜻으로 들렸다. 현장에 있던 전경련 관계자들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허 회장의 진의가 뭔지 쉽사리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는 지금까지 한 달 동안 회장직 연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달 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선 “내 임기는 끝났는데…”라고 했다. 지난달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선 “(연임 여부는) 내가 결정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이틀 전인 지난 5일에는 “좀 쉬고 싶다”면서도 “(연임 여부는) 회원사한테 물어보고 거기에 따르겠다”고 했다.

때문에 이날 허 회장 발언을 두고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전경련 측은 “허 회장의 말은 2년 임기가 끝났으니 일단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 것일 뿐, 재추대해도 응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연임 불가를 못박은 건 아니란 얘기다.

○재추대 가능성 높긴 하지만…

일각에선 허 회장이 연임을 않겠다는 뜻을 굳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허 회장이 연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굳이 ‘임기가 끝났다’ ‘좀 쉬고 싶다’는 얘기를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다. 전경련이 처한 현 상황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허 회장이 이끌었던 지난 2년간 전경련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도 ‘찬밥’ 신세다.

허 회장의 이날 발언을 4대 그룹 등 주요 회원사에 대한 ‘압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현대자동차·LG·SK등 4대 그룹은 지금까지 전경련 활동에 소극적으로 응하고 있다. 허 회장이 연임을 고사하면 4대 그룹 중 한 곳에서 전경련 회장직을 맡으라는 요구가 커질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다음주 중에 주요 그룹들이 재추대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허 회장이 연임에 대해 속 시원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서 전경련과 재계의 고민이 깊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