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의 강남’으로 불리던 정자동의 집값이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때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서울 강남에 버금가던 이 지역의 주택 가격이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반값 구도시’라는 말이 나돌기도 하지만 일부 급매물과 경매 물건 등을 중심으로 한 고가·대형 평수 아파트의 가격 하락 현상을 시장 전체의 상황으로 지나치게 부풀려서 보고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분당구 정자동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은 “이 지역의 대형 평수대가 그동안 워낙 비싸게 거래됐던 터라 1~2년 사이에 거품이 좀 빠지고 나니 ‘추락’ ‘반값 쓰나미’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중형 평수에 사는 사람들은 집값에 그다지 큰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자꾸 나와 동네의 가치가 떨어질까봐 속상하다”고 했다.

정자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 소장은 “이미 몇 년 동안 정자동 아파트의 가격이 뚝뚝 떨어졌고 새삼스럽지도 않다. 신분당선 개통 호재가 있을 줄 알았지만 대형 평수에 사는 이들에겐 지하철역이 그다지 프리미엄이 되지 않는 듯 했다. 무엇보다 거래량이 적어서 죽을 지경이다. 하루에 한 건만 거래돼도 운이 좋은 날”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정자동은 한때 ‘명품 신도시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고려청자의 이미지에 빗대 ‘청자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본래 농경지와 임야가 대부분이었던 이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것은 1991년부터였다.

현재 10만 가구에 약 40만 명이 거주하는 대규모 베드 타운으로 환골탈태한 정자동의 이미지가 한층 격상된 것은 2003년 이후 지하철 서현역·정자역 부근에 들어선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영향이 컸다. 정자동 카페 골목 핵심에 들어선 분당현대아이파크를 비롯해 파크뷰·아데나팰리스·미켈란쉐르빌·더샵스타파크·두산위브제니스·동양파라곤 등 최고급 아파트가 화려하고 웅장한 위엄을 뽐내며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반값 쓰나미?' 정자동에 무슨 일이 "대형 평수 거래 뚝…신분당선이 악재?"
‘3000만 원에서 5억 원까지’ 떨어져

바로 이 랜드마크 부근의 아파트 시세가 추락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인 닥터아파트의 자료에 따르면 2009년에 평균 23억5000만 원까지 호가하던 정자동 파크뷰(공급 면적 234㎡)의 현재 매매 시세는 18억5000만 원이다. 5년 만에 5억 원이나 떨어진 것이다. 대형 평수 위주로 지어진 38층 높이의 미켈란쉐르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급 면적 204㎡의 현 매매 시세는 11억5000만 원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2008년의 16억7000만 원보다 5억 원 이상 급락했다. 비교적 소형 평수도 많은 상록마을 우성 아파트는 공급 면적 86㎡가 2010년 5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5억10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주상복합보다 낙폭이 훨씬 작다.

이에 대해 안소형 닥터아파트 리서치연구소 팀장은 “정자동의 주상복합 아파트의 대다수가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대형 평수대의 주택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분당 정자동의 주상복합 아파트는 예전부터 강남 지역의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가격 상승이 가팔라 ‘거품론’도 없지 않았던 지역이다. 부동산 불황으로 돈이 묶이면서 고가 아파트의 거래가 둔화되고 급매물로 나온 몇몇 아파트가 예전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이 지역 전체의 침체론이 대두된 듯하다”고 전했다.

이러한 하락세는 비단 정자동뿐만이 아니라 분당 신도시 전체에 해당된다.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분당 신도시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10년간 사이시옷 모양의 그래프를 그려 왔다. 2003년에 3.3㎡당 1193만 원이던 아파트 값이 높은 상승 폭을 보이며 2006년에는 2059만 원까지 웃돌더니 고점을 찍은 후부터 매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1521만 원, 현재 는 1509만 원까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정자동의 집값이 하락하게 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로 대형 평수의 인기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래가 뜸해지다 보니 급히 집을 처분해야 하는 이들이 차익을 적게 남기더라도 할인 폭이 큰 가격으로 아파트를 내놓고 있고 이러한 급매 거래가 주변 시세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1기 신도시의 노후화 현상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자녀 교육 때문에 지난해 연말에 분당 지역의 소형 아파트로 이사를 계획했던 한 주부는 “시범단지의 아파트로 갈까 고민했는데 인테리어나 배관 시설이 너무 낡았고 주차장이 많이 부족해 남편이 출퇴근할 때마다 너무 고생할 것 같아 판교의 새 아파트로 마음을 굳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분당의 아파트들은 대개 15년 이상이 되면서 기본 인프라가 낡았다. 심지어 2004년 즈음에 지어진 주상복합 아파트 또한 “촌스럽다”고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기존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깨끗한 판교·광교 등 주변에 들어서는 2기 신도시 쪽으로 옮기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분당 아파트에 물을 틀면 (배수관이 낡아) 녹물이 나온다’는 터무니없는 루머까지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분당 신도시에서 끊임없이 리모델링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워낙 학군도 좋고 생활권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낡은 시설을 보수해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 것. 2011년 리모델링 수평 증축 법안 통과로 분당 지역 최대 수혜 단지로 지목됐던 정자동 한솔주공 5단지, 야탑동 매화마을 1단지 공무원아파트 등은 별다른 진척 없이 답보 상태다. 리모델링에 따른 편의 확충과 집값 상승을 기대하면서도 요즘 같은 불황에 3.3㎡당 300만~400만 원에 달하는 부담금을 내기엔 가계에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경매시장에서도 정자동의 매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매 전문 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분당구 정자동에서 2012년 한 해 동안 나온 물건 수는 185개로 전년보다 43개가 증가했다. 낙찰가율은 71.7%로 2001년 이후 1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최고점을 찍은 2005년 (108.3%)에 비해 대폭 하락한 셈이다.

지난해 12월 감정가 14억 원에 나온 파크뷰 전용면적 139.7㎡는 9억4670만 원에 새 주인을 찾았고 같은 기간에 나온 미켈란쉐르빌 전용면적 157.6㎡는 상대적으로 저층이라 감정가 10억5000만 원에 나왔지만 7억8770만 원에 낙찰됐다. 새해 첫 주 거래에서는 반 토막을 예고하기도 했다. 정자동 현대아이파크 분당1의 전용면적 170.9㎡가 최초 감정가 14억 원에서 3회 유찰돼 경매 최저 매각가가 7억1680만 원에 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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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거품 빠져…판교의 본격 개발도 ‘악재’

이와 함께 정자동 카페 골목을 중심으로 한 일대 상권 또한 구름이 드리워졌다. 상가 정보 전문 업체 점포라인에 따르면 정자동 소재 점포의 3.3㎡당 권리금은 2012년 말 기준 290만 원으로 2008년 422만 원에 비해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거래 건수 또한 2009년에는 126건으로 활발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지난해에는 36건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점포라인의 한 관계자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중심으로 유럽풍의 카페, 이탈리아 레스토랑 등이 대거 입점하며 상가가 조성됐지만 최근에는 거래가 뜸하다. 보증금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이 지역의 상권 가치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신분당선이 개통되자 강남 지역 접근이 쉬워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분당선이 지나가는 판교역 인근에 부지만 14만2150㎡에 주거·상업·업무시설이 혼합된 복합단지인 알파돔시티 내에 대지 면적 2만2905㎡(약 6929평)에 달하는 현대백화점 판교점까지 착공되고 나면 정자동 상가로 유입될 인구의 ‘인근 지역 분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