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의 기원은 11세기 십자군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종교기사단은 자신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특유의 복장과 휘장을 하고 다녔는데 이것이 점차 특수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면서 대중의 존경 대상이 됐다고 한다. 그랬던 것이 국가가 일정한 공을 세운 국민에게 수여하는 오늘날의 훈장으로 자리잡았다. 영어로 ‘order’가 기사단이라는 뜻과 훈장이라는 뜻으로 모두 쓰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에 큰 기여를 한 사람에게 주는 만큼 대부분의 훈장에는 심리적, 물질적 보상이 모두 따른다. 미국 최고의 무공 훈장인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 수상자는 사회적 존경을 받고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청되는 것은 물론 한 달에 최소 1237달러를 받고 의료나 연금에서도 우대된다. 훈장이 종종 선망의 대상이 되는 까닭이다.

훈장이 늘 순수한 의도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집권 세력의 정치적, 그리고 사적인 동기에 의해 이용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면에서 능수능란했던 인물은 나폴레옹이다. 그는 지금도 프랑스 최고의 훈장으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를 1802년 직접 만들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뒤 충복들에게 보상하고 이들로부터 지속적인 충성을 얻어내기 위해 훈장을 적절히 활용했다.

사실 주는 사람 입장에서 훈장만큼 큰 돈 들이지 않고 효과는 만점인 수단도 드물다. 옛 소련이나 북한처럼 전체주의 국가 지도자나 독재자들이 유난히 남발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통치자들이 훈·포장을 이용한다. 어른들의 장난감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남발하거나 누가 봐도 ‘자기편 챙겨주기’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도 역대 정권 말에는 늘 이런 시비가 있어왔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 말기에도 ‘낯 뜨거운 훈·포장 수여’를 두고 적잖은 말들이 오갔다. 이명박 대통령도 논란이 많았던 특별사면을 실시했던 바로 그날 측근을 비롯한 129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특별사면도 말이 많은데 훈장까지 주자 “해도 너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본인과 부인이 함께 받는 무궁화대훈장의 수여 시점과 방법을 놓고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은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받는 게 관례였지만 지금까지 미뤄왔다. 이 대통령이 이 훈장을 ‘셀프 수여’하면 과연 어떤 반응들이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지도자들의 셀프 훈장이라! 참 고약하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