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요리가 아닙니다. 정통 한정식이죠. 맛이 아주 정갈합니다. 양과 종류도 적당하고요. 남기려야 남길 수 없습니다.”

강성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서울 통의동에 있는 한정식집 예담에 마주앉자 음식예찬부터 늘어 놓는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적당히 주는 게 좋다”는 게 전부였다.

강 회장의 첫인상도 그랬다. 경상도 사나이답게 무뚝뚝했다. 약간 미소를 머금은 듯한 얼굴 표정은 좀체 변함이 없었다. 따분한 숫자를 매일 다뤄야 하는 회계사란 직업과 왠지 잘 맞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의 얘기 보따리는 끝이 없었다. 세무관료에서 공인회계사로 변신하고, 회계법인 최고경영자(CEO)로서 능력을 발휘한 사연은 어쩌면 맛보기였다. 상황에 맞는 시를 술술 암송하는 것에서 왜 ‘한국 1호 명예시인’이 됐는지를 알 수 있었다. 미국프로골프지도자협회(PGTCA) 티칭프로 자격증을 가진 골퍼답게 골프에 얽힌 에피소드도 시간가는 걸 잊게 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꿈을 꾸면 이뤄집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부터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무관료에서 공인회계사로

첫 요리로 생선회와 생굴무침, 해삼 등이 들어올 무렵. 강 회장이 반주로 가져온 와인에 대한 설명부터 흥미를 자극했다.

“아르헨티나 와인 ‘이스카이’입니다. 잉카어로 ‘two(2)’란 뜻을 갖고 있죠. 숫자 2와 얽힌 사연이 많아요. 우선 제조자가 둘이에요. 세계적 와인 메이커인 미셸 롤랑과 다니엘 피가 그들이죠. 단맛이 강한 ‘메를로’와 떫은 맛이 나는 ‘말베크’를 반씩 섞어 만든 것도 그렇죠. 그래서 상생과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해삼과 생굴무침을 먹은 뒤 와인을 한모금 마셔 봤다. 단맛과 부드러운 맛이 교차했다. 목넘김도 부드러웠다. 싱싱한 해산물과 남미의 와인은 나름대로 괜찮은 조화를 냈다.

강 회장은 작년 6월 회계사들의 직접 선거를 통해 제41대 공인회계사회 회장에 선출됐다. 그는 처음부터 회계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는 행정고시 10회 관료 출신이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안정남 전 건설교통부 장관 등이 그의 고시 동기다.

강 회장은 행시 합격 후 중부지방국세청 소득세과장과 속초ㆍ마산ㆍ영도세무서장을 지냈다. 업무 능력은 물론이고 부하 직원들에게도 신망이 높아 “계속 국세청에 있다면 나중에 국세청장을 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잘 나가던 관료였다고 한다.

하지만 1986년 초. 그는 돌연 회계법인으로 직장을 옮겼다. “보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당시 권영로 안권회계법인 대표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어요. 안권은 1970년대까지는 부동의 1위였는데, 현실에 안주하다가 삼일회계법인에 밀려 2위로 떨어졌죠. 안권 합류 후 1년 뒤 권 대표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곧바로 공동대표 중 한 명이 됐지요.”

◆“꿈을 꾸면 이뤄진다”

강 회장이 회계사 자격증을 딴 것은 회계법인으로 옮긴 이듬해(1987년)다.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됐을 때다. 안권에 합류할 때 강 회장은 고위 세무관료 출신에게 자동으로 부여되던 세무사 자격증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회계법인에서 성공하려면 회계사 자격증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회계법인 대표를 맡으며 회계사 시험 공부를 해 합격했다.

해산물 접시를 비우자 삼합 계란찜 전복구이 등이 차례로 들어 왔다. 강 회장의 소개대로 양은 적은 편이고 맛은 담백했다. 따끈따끈한 가래떡구이가 나왔다. 그래서 였을까? 화제는 강 회장의 유년 시절로 넘어갔다.

강 회장은 “나는 상고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경북사대부중에서 늘 전교 1등을 했던 그였지만 대구상고에 진학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 탓이었다. 아버지는 6ㆍ25전쟁 때 돌아가셨다. 홀로 되신 어머니가 5남매를 키웠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학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일본에서 성공하신 큰아버지가 한국에 오셨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나중을 생각하면 반드시 대학에 가야 한다고 조언하십디다. 그래서 대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1년 정도 독하게 공부했어요. 결국 서울대 상대에 합격했습니다.”

강 회장은 “힘들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은 지금도 굳게 신봉하는 좌우명을 선물했다”고 말했다. ‘꿈을 꾸면 이뤄진다’가 그것이다. 아무리 주위에서 불가능하다고 해도,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다보면 결국은 꿈은 이뤄진다고 그는 지금도 믿고 있다.

지난해 공인회계사회장 선거 운동을 할 때도 그랬다. 선거 1주일 전만해도 그의 당선 가능성은 낮았다는 것이 회계업계의 분석이었다. 경쟁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크게 밀렸기 때문이다.

“꿈을 계속 꿨죠. 그리고 노력했습니다. 공인회계사회 전국 5개 지회를 여섯 번 돌았습니다. 경쟁 후보들은 지방엔 거의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대역전극이 벌어졌죠. 3분의 2를 제가 득표했습니다.”

◆시인보다 시를 사랑하는 회계사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한우 등심구이와 송이를 곁들인 전이 나왔다. 이어 생선조림, 보리굴비와 식사가 나왔다. 화제를 돌려 취미를 물었다. “시 낭송입니다.”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회계사의 취미치고는 매우 색달랐다.

“1990년대 초반 집사람이 먼저 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집사람을 가르치던 강사가 김재홍 경희대 국문과 교수였는데, 나이가 같아 곧 친구가 됐죠. 김 교수랑 어울리다보니 김남조, 고은, 유안진, 오탁번, 이가림 씨 등 시인들과 친분을 쌓고 시도 배우게 됐죠. 시가 너무 좋아 시를 외우고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강 회장이 줄줄 외우는 시는 320편가량이다. 각종 공적·사적 모임에 나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황에 맞는 시를 낭송한다. 매일 새벽 등산을 할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누워 잠 들기 전에 등 틈이 날 때마다 매일 320편의 시를 한 번씩은 되뇐다고 한다.

"中企위해 무료 회계 컨설팅 같은 재능기부 할 것"

그 쯤되면 시도 직접 쓸법했다. “시도 잘 쓰시겠네요”라고 물었더니 껄껄 웃는다. “시를 써보려 했더니 너무 외우는 시가 많아 나도 모르게 남의 시 구절을 인용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를 써보겠다는 욕심을 접었다. 하지만 그는 시인으로 불린다. 지난해 3월 시인협회로부터 1호 ‘명예시인’ 칭호를 받았다. 시인보다 시를 더 사랑한다고 해서 고은 김남조 김초해 등 시인 세 명이 추천을 해 준 덕분이다.

시와 회계는 공통점이 있을까. “숨어있는 행간의 뜻을 이해해야 하는 점에서 시와 회계는 공통점이 많다”고 그는 설명했다. “유능한 회계사는 잘못된 숫자를 지적하는 단순한 감사인이 아닙니다. 고객 회사가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자문을 해 줘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기업 재무제표 속에 숨겨진 뜻을 알아야 해요. 회계사도 감성적 사고와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러면서 유경환 시인의 ‘낙산사 가는 길’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큰 저울 있어/ 저 못에 담긴/ 고요/ 달 수 있을까/ 산 하나 담긴/ 무게/ 달 수 있을까/ 달 수 있는/ 하늘 저울/ 마음일 뿐.”

“고요와 산을 어떻게 달 수 있습니까.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측량은 불가능합니다. 그걸 달 수 있는 저울, 하늘 저울은 마음입니다. 회계사에게도 인문학과 예술이 중요한 이유지요.”

◆회계사 재능기부 사업에 주력

그의 시에 푹 빠져 들즈음, 누룽지가 나왔다. 잘 익은 김치를 얹어 먹는 누룽지가 참 구수했다. 다른 취미는 없느냐는 질문에 “골프를 꼽을 수 있죠. 2003년 PGTCA 티칭프로 자격증을 땄죠”하고 답했다. 강 회장은 1982년 골프에 입문해 올해로 만 31년째 골프를 치고 있다. 골프 시작 1년 만에 싱글에 진입했고, 지금도 평균 75타는 친다. 베스트 스코어는 67타(5언더파).

“4~5m 퍼팅은 거의 다 넣습니다. 레슨으로 유명한 임진한 프로골퍼랑 라운딩을 해봤는데, 퍼팅은 저에게 한 수 배우고 갔어요.”

골프 얘기를 듣고 있는 사이 후식으로 과일이 들어왔다. 앞으로 공인회계사회장으로서의 업무 추진 계획을 물었다. 그는 대형 및 중소형 회계법인 간 상생 문화 확산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했다. 회계 감사 보수를 현실화하고 중소기업 무료 회계 컨설팅 같은 재능기부 활동도 늘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자리를 정리하면서 시 한수를 부탁했다. 그는 주저없이 박노해 시인의 ‘다시’를 소개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강성원 회장의 단골집 예담 매일 메뉴 바뀌는 정통 한정식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통인시장 쪽으로 5분 정도 걸으면 갈색 벽돌집을 찾을 수 있다. 얼핏보면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입구에 한자로 ‘禮談(예담)’이라고 적힌 흰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담은 다양한 한정식 요리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집이다. 퓨전 요리는 없고 정통 한정식 요리가 나온다.

예담의 가장 큰 특징은 코스 요리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성원 한국공인회계사회장과 만난 날엔 생선회, 생굴무침, 해삼, 꼬막, 삼합, 계란찜, 전복구이, 가래떡구이, 한우 등심구이, 전, 두부김치, 병어조림, 보리굴비, 찐 옥수수, 누룽지 튀박 등 스물대여섯 가지 음식이 나왔지만, 이는 오직 ‘그날만의 메뉴’였다.

예담 사장은 매일 새벽 노량진시장을 찾는다. 최고 싱싱한 식재료만 골라 그날 코스 요리 메뉴를 결정한다.

음식은 양념이 강하지 않고 담백하다. 양도 많지 않은 편이다. 매일 메뉴는 바뀌지만, 단골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미리 메모해 뒀다가 밥상에 올리곤 한다. 점심 식사는 1인당 3만원, 저녁식사는 6만5000원이다. (02)365-6884

이상열/김태호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