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실물경제 못따라가는 한국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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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10위권…톱 은행은 70위권
금융규제 걷어내 자율성 높여야…경제대국 걸맞은 금융강국 가능
이인실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금융규제 걷어내 자율성 높여야…경제대국 걸맞은 금융강국 가능
이인실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우리 집엔 아이들 돌반지나 결혼기념 금 목걸이가 없다. 15년 전 겨울 죄다 은행에 가져가 한 돈당 5만원가량에 팔았다. 팔 당시에는 100여년 전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들께서 국채보상운동을 할 때의 심정이었지만 지금 금값이 한 돈에 얼마인가 생각하면 아쉬운 생각도 든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또 온다면 금모으기 운동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지금도 1997년 외환위기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우리 금융시장은 100년 전 그때처럼 외국인투자자에게 활짝 문호를 개방했고 기업들은 뼈아픈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기업구조조정에 쓰려고 만들었던 부실채권정리기금이 다음달 22일 청산절차를 밟는다. 그동안 세 정권을 거쳐 구조조정의 임무를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지만 단군 이래 최대라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놓은 금융산업은 무엇을 우리에게 남겼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긴 지 4년이 지났다. 회복이라 보긴 어렵지만 경기가 바닥을 지나고 있다. 금융의 발전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친 데다, 저축은행 사태 등 불미스런 일이 터져서 사태수습에만 급급했다. 경기침체와 양극화로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하라는 정치사회적 압력은 커져만 갔다. 발전방안을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듯싶다. 이제는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금융의 발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해결해야 하고 저성장 저금리 시대라는 한 번도 겪지 못한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금융업은 ‘제조업의 시녀’란 소리를 들으면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선진국 금융산업은 1970년대 이후 탈규제시대로 접어들면서 발전을 거듭하다 지나친 탐욕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규제의 된서리를 맞았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산업은 제대로 꽃 한 번 펴보지도 못했다.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를 넘었고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1조달러를 이뤘으며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금융산업의 모습은 여전히 초라하다. 그나마 잘나간다는 은행권이 세계 70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축소지향적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커져가는 금융리스크와 도덕적 해이를 막는 방향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건 맞지만 지금처럼 규제당국이 구체적인 금융업무와 영업행위에 대해 시시콜콜 들여다보고 감독해선 안된다. 우리 금융은 한 번도 영미권 금융산업처럼 시장 만능주의에 빠져본 적이 없지 않은가. 건전성 규제나 소비자 보호는 더 총체적으로 강화돼야 하지만 금융산업의 자율성은 더 높아져야 한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사이 세계 금융산업에 재규제가 가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일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가 머뭇거릴 바로 이때가 우리의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선 우리 금융산업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있어야 한다. 진부하지만 진실인 것은 금융과 실물경제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다. 우리 금융이 규모와 경쟁력에서 실물경제 수준과 맞먹게 커야 절름발이 경제를 면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의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의 광고 전광판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은 우리 기업이 다국적화하는 순간 그 기업과 거래가 끝나버린다. 자금 조달력이나 네트워크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요국이 양적완화를 선언했고 실행에 들어갔다. 중국은 자본유입을 막고 있어 피해가 적을 것이지만 보호막 없이 가장 피해를 볼 나라가 한국이다. 불행히도 새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개편안에 금융산업발전에 대한 고민은 아직까지 크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간다면 외환위기 때보다 더 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글로벌 경제에 걸맞은 우리 식의 역동적 금융산업 전반의 발전방향이 나와야 한다. 국민들이 한 생애에 두 번씩이나 금붙이를 내놓을 걸 기대해선 안된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지금도 1997년 외환위기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우리 금융시장은 100년 전 그때처럼 외국인투자자에게 활짝 문호를 개방했고 기업들은 뼈아픈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기업구조조정에 쓰려고 만들었던 부실채권정리기금이 다음달 22일 청산절차를 밟는다. 그동안 세 정권을 거쳐 구조조정의 임무를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지만 단군 이래 최대라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놓은 금융산업은 무엇을 우리에게 남겼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긴 지 4년이 지났다. 회복이라 보긴 어렵지만 경기가 바닥을 지나고 있다. 금융의 발전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친 데다, 저축은행 사태 등 불미스런 일이 터져서 사태수습에만 급급했다. 경기침체와 양극화로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하라는 정치사회적 압력은 커져만 갔다. 발전방안을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듯싶다. 이제는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금융의 발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를 해결해야 하고 저성장 저금리 시대라는 한 번도 겪지 못한 상황에도 대처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금융업은 ‘제조업의 시녀’란 소리를 들으면서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선진국 금융산업은 1970년대 이후 탈규제시대로 접어들면서 발전을 거듭하다 지나친 탐욕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규제의 된서리를 맞았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산업은 제대로 꽃 한 번 펴보지도 못했다.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를 넘었고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1조달러를 이뤘으며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금융산업의 모습은 여전히 초라하다. 그나마 잘나간다는 은행권이 세계 70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축소지향적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커져가는 금융리스크와 도덕적 해이를 막는 방향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건 맞지만 지금처럼 규제당국이 구체적인 금융업무와 영업행위에 대해 시시콜콜 들여다보고 감독해선 안된다. 우리 금융은 한 번도 영미권 금융산업처럼 시장 만능주의에 빠져본 적이 없지 않은가. 건전성 규제나 소비자 보호는 더 총체적으로 강화돼야 하지만 금융산업의 자율성은 더 높아져야 한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사이 세계 금융산업에 재규제가 가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일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가 머뭇거릴 바로 이때가 우리의 금융회사들이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선 우리 금융산업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있어야 한다. 진부하지만 진실인 것은 금융과 실물경제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다. 우리 금융이 규모와 경쟁력에서 실물경제 수준과 맞먹게 커야 절름발이 경제를 면할 수 있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의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의 광고 전광판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은 우리 기업이 다국적화하는 순간 그 기업과 거래가 끝나버린다. 자금 조달력이나 네트워크가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요국이 양적완화를 선언했고 실행에 들어갔다. 중국은 자본유입을 막고 있어 피해가 적을 것이지만 보호막 없이 가장 피해를 볼 나라가 한국이다. 불행히도 새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개편안에 금융산업발전에 대한 고민은 아직까지 크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간다면 외환위기 때보다 더 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글로벌 경제에 걸맞은 우리 식의 역동적 금융산업 전반의 발전방향이 나와야 한다. 국민들이 한 생애에 두 번씩이나 금붙이를 내놓을 걸 기대해선 안된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