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다니는 배상진 과장(36)은 얼마 전 백화점에서 겨울 코트를 하나 더 샀다. 정가가 100만원이 넘었지만 ‘30% 세일’이란 종업원의 말에 주저 없이 지갑에서 카드를 빼들었다. 배 과장은 “집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지만 일단 사고 싶은 것은 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같은 사람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부채가 급증하고 저축률이 낮은 데는 이 같은 금융 태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금융교육 국제네트워크(INFE)’의 조사 방식을 따라 국내 최초로 국민들의 금융이해력을 조사한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금융이해력은 ‘금융지식’ ‘금융행위’ ‘금융태도’ 등 3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금융이해력은 22점 만점에 14.2점으로 전체 15개국 중 체코에 이어 공동 7위에 올랐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가 1위였으며 독일 헝가리 말레이시아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순이었다.

금융지식과 금융행위에서는 각각 4위와 5위로 중상위권에 올랐지만 금융태도는 13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금융지식은 분산투자효과와 대출이자 개념, 원리금 계산 등 기초지식을 물어 측정한다. 한국인은 실제 금융행위와 관련된 지식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지만 원리금계산이나 복리개념 등 기본 개념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행위에 있어서도 평소 재무상황 점검이나 각종 대금의 적기 납부 등 합리적인 금융경제 생활을 위한 기본 요건은 다소 미흡한 수준이었다.

특히 금융태도 점수는 상당히 저조했다. 금융태도는 △나는 저축보다 소비에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나는 오늘을 위해 산다 △돈은 쓰기 위해 있는 것이다 등 3개 질문으로 평가한다. 전혀 동의하지 않을수록 높은 점수를 매긴다. 한국은 5점 만점에 평균 3점으로 15개국 가운데 13위에 머물렀다. 조홍균 한은 경제교육팀장은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고 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이해력 수준은 연령별로 차이를 보였다. 18~29세의 청년층은 금융이해력 총점이 13.5점으로 100점 만점으로 환산할 경우 60점을 겨우 넘었다. 중년층(30~49세)은 15점, 장년층(50세 이상)은 13.8점이었다. 특히 금융태도 점수에서 연령별 격차가 컸다. 청년층은 2.9점으로 여타 연령층(3.1점)보다 낮았다. 특히 ‘돈은 쓰기 위해 있다’는 문항에 대한 청년층의 태도 점수는 2.4점에 불과했다.

조 팀장은 “경제주체들의 금융태도가 가계부채, 가계저축률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바람직한 금융태도 형성을 위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