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자본시장] 61개 증권사 순익 45% '뚝' 금융투자업계 '생존 벼랑'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 금융투자업이 흔들린다
수수료 중심 수익구조 못 벗어나 위기 자초
제살깎기 수수료 인하 경쟁…ELS 등 유행상품만 집착
IB육성 위한 제도적 지원 절실
수수료 중심 수익구조 못 벗어나 위기 자초
제살깎기 수수료 인하 경쟁…ELS 등 유행상품만 집착
IB육성 위한 제도적 지원 절실
중형 증권사 주식자본시장(ECM) 팀장인 A씨는 올해 연봉 삭감을 각오하고 있다. 실적이 거의 없어서다. 자동차 부품업체의 기업공개(IPO) 주관사 수주를 2년 전부터 공들여왔지만 물 건너갔다. 증시 부진으로 지난해 말 상장예비심사 청구를 또 연기했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중소형 비상장업체들에 IPO를 권유하고 있지만 별무소득이다.
대기업 계열 H증권사의 수도권 지점에서 근무하는 B부장은 최근 한숨만 늘었다. 그는 “작년 1950년대생인 선배 중 몇몇은 1년치 연봉을 위로금으로 받고 사직서를 내라는 압박을 받았다”며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61곳 중 15곳이 적자
금융투자업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이익은 줄고 있는데 뚜렷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61개 증권사(외국계·외국계지점 포함)의 2012회계연도 상반기(2012년 4~9월) 순이익은 6745억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1조2404억원)보다 45.6%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적자를 낸 증권사만 15개나 된다. 상황이 이렇자 증권사들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증권사 임직원은 지난해 3월 말 4만3820명에서 9월 말 4만3091명으로 약 730명 줄었다. 지점 수도 2011년 9월 말 1779개에서 지난해 9월 말 1681개로 100개 가까이 감소했다. 점포와 직원을 줄여서라도 일단 살아남고 보자는 생각에서다.
한 중소형 증권사 사장은 “90% 이상의 지점이 적자를 내고 있을 것”이라며 “주식시장이 살아날 것에 대비한다면 적자 지점도 끌고 가는 게 맞지만 당장 손실을 줄이는 것이 급하다”고 말했다.
○편중된 수익구조가 발목 잡아
금융투자업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의 순영업수익 중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 비중은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기준 약 49.2%다.
그러다 보니 증시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확 달라진다. 주식거래가 활발하면 이익도 늘어난다. 반면 주식거래가 움츠러들면 이익도 줄어든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은 2011년보다 29.71% 줄었다. 2012회계연도 상반기 증권사들의 수탁수수료 수익도 1조893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5.7% 급감했다. ‘천수답 경영’에서 아직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의 수수료율 인하 경쟁은 제 살을 깎아먹었다. 증권사들의 주식위탁매매 수수료율 평균은 2010년 3월 말 0.11%에서 지난해 3월 말 0.099%로 하락했다. 작년 9월 말에는 0.092%로 더 떨어졌다. 수수료율이 최저 0.015%인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활성화로 증권사의 수수료율 평균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이전만 해도 통용되던 ‘지수 상승→거래대금 증가→증권사 수익 증가’라는 연결고리가 깨진 것도 원인이다. 작년 코스피지수는 9% 넘게 올랐지만 거래대금은 29.71% 줄었다. 장기투자를 주로 하는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2010년 12%에서 지난해 17%로 높아진 반면 매매가 활발한 개인투자자 비중은 74%에서 65%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ELS 등 유행상품만 좇아 다녀
수익성은 낮아지는데 금융투자회사들은 여전히 유행 따라 특정 상품에만 몰려다니고 있다. 지난해 유행한 주가연계증권(ELS)이 대표적이다. 2012년 ELS 발행액은 47조5356억원으로 2011년(35조1075억원)보다 26.14% 늘었다. 발행 건수만 1만7791건. 그러나 지난해 금융투자협회에서 특허와 비슷한 ‘3개월 배타적 사용권’을 받은 ELS 상품은 총 6건에 불과하다. 독창적 상품을 개발하기보다는 베끼기에만 주력했다는 뜻이다.
성장 동력도 찾기 힘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엔 국내 증권사들은 “IB 업무가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대형 해외 딜은 외국계 IB에 뺏기고 있다. 국내의 작은 국내 딜을 놓고도 치열한 수수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작년 SK루브리컨츠 상장 주관사 선정과정에서 수수료율이 1bp(0.01%)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주관사 업무를 따내도 먹을 것이 별로 없다. 증권사들이 인수·주선으로 벌어들인 IB 수수료 수익은 2012회계연도 상반기(4~9월) 2343억원으로 직전 하반기보다 11.1% 감소했다.
자산관리 수익도 마찬가지다. 랩어카운트 인기로 2011회계연도 증권사의 자산관리수수료 수익 비중은 4.2%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작년 4~9월엔 940억원으로 전년 동기(1730억원)보다 45.7% 줄었다.
○“자본시장 기능 살려야”
문제는 금융투자업계가 저수익 구조에서 벗어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식거래대금은 올해도 줄고 있다. 주식형펀드도 지속적으로 감소세다. 기관투자가들이 주식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선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10년 이상 장기펀드에 대한 세제혜택도 도입되지 않아 장기자금을 끌어들이기도 버겁다.
IB업무와 자산관리업무가 획기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IB업무의 경우 당장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발목이 잡혀 있다. KDB대우증권 등 5개 증권사는 대형 IB가 되기 위해 3조6000억원을 증자했지만 법 통과가 지연돼 신규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자산관리업무도 은행과의 다툼이 치열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
창업 초기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도록 구상된 제3의 주식시장인 코넥스도 아직 개설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로서의 자본시장 기능도 잃고 있다는 얘기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면 기업들의 자금조달도 늘어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는데 현재 상황은 정반대”라며 “증권사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본시장의 제 기능을 살린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대기업 계열 H증권사의 수도권 지점에서 근무하는 B부장은 최근 한숨만 늘었다. 그는 “작년 1950년대생인 선배 중 몇몇은 1년치 연봉을 위로금으로 받고 사직서를 내라는 압박을 받았다”며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61곳 중 15곳이 적자
금융투자업계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이익은 줄고 있는데 뚜렷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61개 증권사(외국계·외국계지점 포함)의 2012회계연도 상반기(2012년 4~9월) 순이익은 6745억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1조2404억원)보다 45.6%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적자를 낸 증권사만 15개나 된다. 상황이 이렇자 증권사들은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증권사 임직원은 지난해 3월 말 4만3820명에서 9월 말 4만3091명으로 약 730명 줄었다. 지점 수도 2011년 9월 말 1779개에서 지난해 9월 말 1681개로 100개 가까이 감소했다. 점포와 직원을 줄여서라도 일단 살아남고 보자는 생각에서다.
한 중소형 증권사 사장은 “90% 이상의 지점이 적자를 내고 있을 것”이라며 “주식시장이 살아날 것에 대비한다면 적자 지점도 끌고 가는 게 맞지만 당장 손실을 줄이는 것이 급하다”고 말했다.
○편중된 수익구조가 발목 잡아
금융투자업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의 순영업수익 중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 비중은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기준 약 49.2%다.
그러다 보니 증시 움직임에 따라 수익이 확 달라진다. 주식거래가 활발하면 이익도 늘어난다. 반면 주식거래가 움츠러들면 이익도 줄어든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거래대금은 2011년보다 29.71% 줄었다. 2012회계연도 상반기 증권사들의 수탁수수료 수익도 1조893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5.7% 급감했다. ‘천수답 경영’에서 아직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의 수수료율 인하 경쟁은 제 살을 깎아먹었다. 증권사들의 주식위탁매매 수수료율 평균은 2010년 3월 말 0.11%에서 지난해 3월 말 0.099%로 하락했다. 작년 9월 말에는 0.092%로 더 떨어졌다. 수수료율이 최저 0.015%인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홈트레이딩시스템(HTS) 활성화로 증권사의 수수료율 평균은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이전만 해도 통용되던 ‘지수 상승→거래대금 증가→증권사 수익 증가’라는 연결고리가 깨진 것도 원인이다. 작년 코스피지수는 9% 넘게 올랐지만 거래대금은 29.71% 줄었다. 장기투자를 주로 하는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2010년 12%에서 지난해 17%로 높아진 반면 매매가 활발한 개인투자자 비중은 74%에서 65%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ELS 등 유행상품만 좇아 다녀
수익성은 낮아지는데 금융투자회사들은 여전히 유행 따라 특정 상품에만 몰려다니고 있다. 지난해 유행한 주가연계증권(ELS)이 대표적이다. 2012년 ELS 발행액은 47조5356억원으로 2011년(35조1075억원)보다 26.14% 늘었다. 발행 건수만 1만7791건. 그러나 지난해 금융투자협회에서 특허와 비슷한 ‘3개월 배타적 사용권’을 받은 ELS 상품은 총 6건에 불과하다. 독창적 상품을 개발하기보다는 베끼기에만 주력했다는 뜻이다.
성장 동력도 찾기 힘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엔 국내 증권사들은 “IB 업무가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대형 해외 딜은 외국계 IB에 뺏기고 있다. 국내의 작은 국내 딜을 놓고도 치열한 수수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작년 SK루브리컨츠 상장 주관사 선정과정에서 수수료율이 1bp(0.01%)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주관사 업무를 따내도 먹을 것이 별로 없다. 증권사들이 인수·주선으로 벌어들인 IB 수수료 수익은 2012회계연도 상반기(4~9월) 2343억원으로 직전 하반기보다 11.1% 감소했다.
자산관리 수익도 마찬가지다. 랩어카운트 인기로 2011회계연도 증권사의 자산관리수수료 수익 비중은 4.2%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작년 4~9월엔 940억원으로 전년 동기(1730억원)보다 45.7% 줄었다.
○“자본시장 기능 살려야”
문제는 금융투자업계가 저수익 구조에서 벗어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식거래대금은 올해도 줄고 있다. 주식형펀드도 지속적으로 감소세다. 기관투자가들이 주식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선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10년 이상 장기펀드에 대한 세제혜택도 도입되지 않아 장기자금을 끌어들이기도 버겁다.
IB업무와 자산관리업무가 획기적인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IB업무의 경우 당장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발목이 잡혀 있다. KDB대우증권 등 5개 증권사는 대형 IB가 되기 위해 3조6000억원을 증자했지만 법 통과가 지연돼 신규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자산관리업무도 은행과의 다툼이 치열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
창업 초기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도록 구상된 제3의 주식시장인 코넥스도 아직 개설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로서의 자본시장 기능도 잃고 있다는 얘기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면 기업들의 자금조달도 늘어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는데 현재 상황은 정반대”라며 “증권사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본시장의 제 기능을 살린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