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월14일 오전 7시21분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책금융기관 간 역할·기능 재조정 또는 통·폐합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수출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수은이 자본시장연구원에 맡긴 ‘한국 대외 정책금융의 효율적인 운영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가 발단이 됐다. 작년 말 나온 이 용역보고서는 정책금융기관 간 중복 업무와 과열 경쟁을 없애기 위해 통합 공적수출신용기관(ECA)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국내 수출 규모를 감안했을 때 수은을 중심으로 자기자본 16조원 이상의 통합 ECA를 만들어 중소기업 수출과 해외 투자 등에 필요한 금융을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다.

연구용역 총괄 책임자인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금융기관끼리 심사 기준이 달라 국가 차원에서 위험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대외 협상력뿐만 아니라 재정 운영의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책금융공사는 발끈하고 나섰다. 공사 관계자는 “민감한 시기에 연구용역 보고서를 내놓은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수은에 유리하게 여론을 형성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동안 수은과 정책금융공사를 비롯해 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 사이의 밥그릇 싸움은 해묵은 난제로 지적돼 왔다. 수은과 무보는 수출기업에 대한 보증 업무가 겹치면서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2009년 산은에서 분리된 정책금융공사는 중소기업 지원 등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산은과 수은, 정책금융공사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나 투자은행(IB) 등의 영역에서 충돌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소관 부처가 다르다 보니 정책 통일성이 떨어지고 부처별 영역 다툼이 그대로 기관별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관마다 생존 논리를 개발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에 나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기관 간 역할과 기능을 빨리 조정해 효율적 정책금융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기능별 재편이나 기관 간 통·폐합이 거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예 정책금융기관을 묶어 지주회사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한 개의 지주회사가 기능이 각기 다른 여러 기관을 거느리는 독일의 재건은행(KFW) 방식이나 모든 기관을 통합한 일본의 일본정책금융공고(JFC) 방식 등이 대표적 예다.

김은정/장창민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