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카이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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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멀어진 만큼 팍팍해지는 삶
계절 변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면…
임창섭 < 하나대투증권 사장 csrim@hanafn.com >
계절 변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면…
임창섭 < 하나대투증권 사장 csrim@hanafn.com >
올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추운 겨울이라 산행보다는 나을 듯싶어 산책을 나섰다. 하얗게 눈 덮인 호숫가 눈길을 걷자니 뽀드득 뽀드득 발밑에 눈 밟히는 소리가 재미있다. 햇살에 빛나는 눈길은 보석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저 빛은 어느 깊은 산중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빛과도 촌수가 가까울 것이다.
청계산이 옅은 아침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부드러운 능선이 하늘과 맞닿은 곳. 스카이라인이 아름답다. 도시에서 이렇게 가까이 산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 아니고서는 드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축복받았다. 자연이 주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을 한결 푸근하고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졸업한 지 한참 만에 학교에 들른 적이 있다. 캠퍼스 언덕에서 둘러본 스카이라인은 병풍을 친 듯 사방이 온통 고층아파트뿐이었다. 예전엔 저렇게 높은 인공의 구축물들로 둘러싸여 있지 않았는데….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온 지도 40년이 넘었다. 그리고 결혼 후 30년 넘게 과천에서 미련스럽게 살고 있는 것은 고향집처럼 대문만 나서도 푸른 바다와 우뚝 솟은 산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청계산과 관악산을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지인들이 이곳에서 살다 떠나갔지만 난 아직도 줄곧 여기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도 많이 변했다. 출근길 차창 밖으로 오롯이 들어왔던 청계산 모습이 언제부턴가 높다란 크레인이 늘어섰다 싶더니만 지금은 높게 자란 나무의 키를 서너 배는 훌쩍 넘긴 아파트들로 많이 가려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위가 논밭이라 출근길엔 산등성이 위 눈부신 태양과 봄이면 양재천변에 물오른 연두색 수양버들 잎 돋는 모습을, 가을이 깊어지면 짐승털빛으로 변해가는 산자락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자연과 조우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줄어든 공간만큼 우리의 삶은 더욱 외롭고 팍팍해지는 것 같다.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를 가만히 되뇌어본다.
‘백인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라곤 없습니다. 아무데서도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며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내가 야만인이어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소음은 내 귀를 상하게 합니다. 만일 사람이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나 밤의 연못가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도 점점 새로운 모습의 야만인이 돼가는지 모른다. 도시라는 이름의 리바이어던 때문에….
임창섭 < 하나대투증권 사장 csrim@hanafn.com >
청계산이 옅은 아침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부드러운 능선이 하늘과 맞닿은 곳. 스카이라인이 아름답다. 도시에서 이렇게 가까이 산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 아니고서는 드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축복받았다. 자연이 주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을 한결 푸근하고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졸업한 지 한참 만에 학교에 들른 적이 있다. 캠퍼스 언덕에서 둘러본 스카이라인은 병풍을 친 듯 사방이 온통 고층아파트뿐이었다. 예전엔 저렇게 높은 인공의 구축물들로 둘러싸여 있지 않았는데….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온 지도 40년이 넘었다. 그리고 결혼 후 30년 넘게 과천에서 미련스럽게 살고 있는 것은 고향집처럼 대문만 나서도 푸른 바다와 우뚝 솟은 산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청계산과 관악산을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지인들이 이곳에서 살다 떠나갔지만 난 아직도 줄곧 여기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곳도 많이 변했다. 출근길 차창 밖으로 오롯이 들어왔던 청계산 모습이 언제부턴가 높다란 크레인이 늘어섰다 싶더니만 지금은 높게 자란 나무의 키를 서너 배는 훌쩍 넘긴 아파트들로 많이 가려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위가 논밭이라 출근길엔 산등성이 위 눈부신 태양과 봄이면 양재천변에 물오른 연두색 수양버들 잎 돋는 모습을, 가을이 깊어지면 짐승털빛으로 변해가는 산자락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자연과 조우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줄어든 공간만큼 우리의 삶은 더욱 외롭고 팍팍해지는 것 같다.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편지를 가만히 되뇌어본다.
‘백인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라곤 없습니다. 아무데서도 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며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 내가 야만인이어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소음은 내 귀를 상하게 합니다. 만일 사람이 쏙독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나 밤의 연못가에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도 점점 새로운 모습의 야만인이 돼가는지 모른다. 도시라는 이름의 리바이어던 때문에….
임창섭 < 하나대투증권 사장 csrim@hanaf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