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짐 같은 건 없어요. 제야의 종소리 들으면서 그냥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지난 5일 밤 10시를 넘은 시간. 서울 모 대학교 도서관에서 나오는 김송이 씨(23세. 가명)에겐 새해의 희망도 꽁꽁 얼어붙은 듯 하다. 김 씨의 꿈은 디자이너다.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김 씨는 논현동에 위치한 L모 의류 브랜드 업체에서 7개월째 인턴생활을 하고 있다. 주말도 쉬지 못한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이날도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말이 인턴이지 언니들 야식 주문하는데 잘 나가는 메뉴 추천까지 해야 해요. 전단지 모아다가 보여주면서 오늘은 이거 제일 많이 먹는다고 골라주고… "

아침에 눈치껏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허드렛일을 한다는 김모 씨. 단추 달기, 피팅(옷을 가봉하기 전에 입혀보는 것), 다림질 등을 한다. 가끔은 선배들이 원단을 찾느라 열어놓은 서랍을 닫아주는 일도 맡고 있다.

김 씨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시작한 인턴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정직원으로 전환해준다던 인턴생활은 기약 없이 길어져간다. 실무 기회도 없이 잔심부름만 하기 때문이다. 월급은 70만 원. 박봉이지만 그만둘 수도 없다.

목도리를 칭칭 두른 박민현 씨(24세.가명)는 일년 간의 휴학 후 복학을 앞두고 있다. 당장 졸업하기엔 왠지 불안해 휴학을 했다.

“주변에 휴학 안 하는 애들이 없고 졸업 유예까지 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필요한 스펙을 쌓거나 자격증을 따는 데 집중하는 거죠. 저도 휴학을 했는데 취업에 얽매여 다른 걸 해보진 못 했어요. ”

은행권 취업을 희망하는 박 씨는 휴학기간 동안 금융 관련 자격증을 땄다. 휴학 기간의 반은 학비와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박 씨는 은행권에 취업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경제학을 전공해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요즘 박 씨는 토익 공부도 하고 있다.

김 씨와 박 씨에게서 인생의 꿈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사정은 다르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김 씨와 꿈이 없어 불안한 박 씨 모두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국내외 경기가 쉽게 호전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에 갇혀 인생의 황금기인 대학생활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대학생들.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문턱으로 인해 대학생들은 취업 준비생으로 불린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스쿨'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여행을 떠나보거나 밴드에 가입을 하는 학생들도 '용기'를 냈다기 보다는 '이력'을 염두에 두는 게 현실이다. 인턴이란 이름 아래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학생들은 감내할 수 밖에 없다. 이력 한 줄이 아쉬운 대학생들은 스스로 '을'이 되기 때문이다.

방학도 한파도 잊은 채 학업에 열중하는 대학생들. 그러나 학문의 전당인 대학 캠퍼스에선 젊은 열기가 아니라 무기력함이 느껴진다.

새롭게 마음 먹고 희망찬 각오를 다지는 새해 벽두. 김 씨와 박씨 같은 젊은이들은 언제부터 새해 각오를 잊은 것일까. 이들이 내뱉이 한숨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얼어붙었다. 7일 본격 활동을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한경닷컴 최수아 인턴기자 suea@nate.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