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꾼다고는 했는데, 정작 바뀐 건 하나도 없네요.” 한 대기업 자금 담당자가 기업어음(CP)시장에 대해 한 얘기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불투명한 CP시장을 바꾸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선 방안을 내놨다. 만기가 1년 이상인 CP는 의무적으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등 규제·감독을 강화키로 했다. 공시 의무를 피하기 위해 회사채 대신 CP를 찾는 기업의 ‘꼼수’를 차단하겠다는 취지였다.

금융당국은 대신 발행과 유통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전자단기사채에 힘을 실어줬다. 일정 만기 이하인 전자단기사채에 대해선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해주고, 머니마켓펀드(MMF)에 편입할 수 있는 한도도 늘려주기로 했다. 궁극적으로 CP를 전자단기사채로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관련 규정을 지난해 하반기까지 개정할 계획이었다.

이런 계획에 따라 전자단기사채제도가 오는 15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당장 전자단기사채가 신용평가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정상적으로 시장에서 유통되기 위해서는 신용평가회사에서 부여한 신용등급이 필요하다. 또 증권신고서 제출·면제에 대한 규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은행의 업무 참가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다.

전자단기사채의 이중적 성격도 문제다. CP를 대신하지만 법적 성격은 사채다. 사채 발행 한도가 정해져 있는 공기업은 전자단기사채 발행이 쉽지 않다. 전자단기사채의 이자소득세 원천징수 면제와 관련해서는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여전히 줄다리기 중이다.

관련 규정 개정이 늦어지면서 시장의 혼란은 커지고 있다. 당초 전자단기사채에 관심을 보였던 일부 대기업들은 CP 발행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 제도조차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나서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신용평가사들은 전자단기사채의 신용평가를 위해 관련 법 개정만 기다리고 있다.

이 틈을 타 신용도가 좋지 않은 일부 기업은 만기가 2년을 웃도는 변종 CP를 활발하게 발행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제도가 시행돼도 실제 전자단기사채를 발행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게 뻔하다. 왜곡된 단기 금융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책에 걸맞은 체계적인 준비 과정이 아쉽다.

김은정 증권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