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사진)과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가 이달 중 북한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3일 알려졌다. 정보기술(IT)업계의 상징적 존재인 슈미트 회장이 가장 폐쇄적 국가인 북한을 방문함에 따라 국제사회를 향해 북한이 빗장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외교 소식통은 이날 “슈미트 회장의 북한 방문은 지난달 12일 실시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부터 검토된 것으로 안다”며 “이르면 다음주 중 방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AP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슈미트 회장이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이끄는 사적, 인도주의적 목적의 방북에 동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특히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 관리들과 접촉을 시도할 것이라며 배씨를 직접 만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최근 배씨를 간첩 혐의로 억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내면서 수차례 방북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개인적 목적의 방문인 만큼 미국 당국과의 교감이 있다든가 특사 성격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과거 미국인 여기자 두 명이 억류됐을 때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인 선교사 아이잘론 말리 곰즈가 2010년 억류됐을 때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특사로 가 석방협상을 벌였다”며 “북한이 미국의 특사로 정계 거물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슈미트 회장과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방북이 배씨 석방을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만다 스미스 구글 대변인 역시 슈미트 회장의 방북 여부에 대한 질문에 “개인적인 여행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는다”고 언급해 이번 방북이 사업이나 정부 차원의 목적이 아님을 시사했다.

우리 당국에 따르면 슈미트 회장의 방북은 배씨의 억류가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 소식통은 “슈미트 회장이 평소 ‘인터넷을 통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국제적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며 “인터넷 환경이 가장 폐쇄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인 북한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슈미트 회장이 평양에서 어떤 인사들을 만날지는 전해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IT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김정은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도 과학기술강국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북한 내 휴대폰 가입자 수가 150만명을 넘어섰고, 북한판 태블릿PC까지 등장하는 등 정책적으로 IT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 당국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해 9월25일 제8차 평양가을철국제상품전시회(24~27일)에서 휴대용 전자기기인 ‘판형콤퓨터(태블릿 PC)’가 큰 관심을 끌었다고 전했다.

현재 북한에는 조선콤퓨터중심(KCC)의 ‘삼지연’, 평양기술총회사(PIC)의 ‘아리랑’, 아침·판다합작회사의 ‘아침’ 같은 태블릿 PC가 판매되고 있다. 김정은은 애플사의 아이패드를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