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늦봄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경계근무를 하면서 본 아름다운 풍광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른쪽으로는 동해바다, 왼쪽으로는 설악산 줄기가 뻗어내린 곳이었다. 나는 철책 근무를 하던 중 늦게 핀 진달래가 산을 빨갛게 물들인 가운데 눈이 내린 광경을 보게 됐는데 붉은 진달래와 양털처럼 하얀 눈의 조화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재수해서 대학을 입학한 뒤 곧바로 휴학하고 21세에 군에 입대했다. 최전방에 배치돼 긴장의 연속이었으나 한편으론 사회에서 보기 힘든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불꽃놀이보다 더 화려한 광경도 봤다. 예광탄에 의해 발생한 산불이 비무장지대로 번진 것이었다. 비무장지대는 손을 쓸 수가 없다. 며칠 동안 타기도 한다. 달빛이 없는 칠흑 같은 밤은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산불에 의해 지뢰가 터지면 섬광이 밤하늘에 퍼져나간다.

물론 최전방이 평화로울 수만은 없다. 느닷없이 해안가로 무장공비가 침투해 비상이 걸리기도 하고 멀리 100여㎞를 행군해 공군 전차부대 포병부대 등과 실사격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때 전차를 호위하며 달렸는데 육중한 전차가 얼마나 빨리 기동하는지 처음엔 깜짝 놀랐다.

입대한 지 1년쯤 돼 어느 정도 군생활에 적응하던 1983년 2월 하순.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철책근무에서 빠져 나와 부대로 복귀한 뒤 훈련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실제 비상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군생활에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막상 실제 상황에 맞닥뜨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쏜살같이 내무반으로 뛰어들어가 군장을 꾸리고 식량과 실탄 수류탄을 배정받았다. 출동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아~그동안 받은 훈련이 바로 이때를 위한 것이군.” 불과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릿속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의 모습이 지나갔고 친구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최전방이라 상황이 벌어지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은 부대원들 모두가 하고 있었을 때였다. 하지만 조금 있다가 비상이 해제됐다. 북한에서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민간인 통제선에서 검문을 맡았을 때는 월북하려는 사람을 잡아 관계기관으로 넘긴 적도 있다. 행동이 수상해 소지품을 검사해보니 뜻밖에도 최전방의 상세한 지도가 나왔고 몇 가지 의심스런 물품도 찾아냈다. 이를 계기로 포상휴가도 얻었다.

군생활은 긴장 속 경계근무와 훈련의 연속이었다. 이런 힘든 군 경험은 사회생활에서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 성인교육을 담당하는 온·오프라인 교육업체 에듀윌을 창업해 매출 300억원을 바라보는 업체로 키우는 과정에서 힘든 일도 여러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군 생활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며 극복했다. 자신감과 인내심, 이 두 가지는 군대 경험자만이 배울 수 있는 특권이다.

이스라엘이 벤처 최강국으로 자리잡은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하버드대나 예일대 출신보다 정예부대 군출신을 기업체에서 더 우대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는 경영환경이 급변한다. 이를 빨리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기업경영에서 매우 중요한데 이런 능력은 전쟁 상황을 가정하고 훈련을 반복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