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적으로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유난히 높았던 올해도 사흘밖에 안 남았다. 불투명한 만큼 연초에 전망했던 경제성장률은 일년 내내 줄줄이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침체된 세계경제와 글로벌 경제위기의 위협 속에서 한국 경제는 잘 버텨왔다고 생각된다. 지난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국제콘퍼런스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외국의 학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보다 한국 경제를 더 높이 평가하고 있고 한국 경제의 성공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물론 무엇이 가장 아픈 실패냐는 질문도 있었다.

핵개발 의혹으로 강력한 금융 무역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 학자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이란은 원유수출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고 리알화 가치는 폭락했다. 이란 중앙은행의 공식 환율은 달러당 1만2260리알이지만 시장에서는 달러로 물건 값을 지급하면 3만 리알로 쳐서 계산해주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였다는 유적지를 가보니 문을 닫은 상점이 많았고 썰렁한 분위기였다.

연말이라 더욱 북적대는 서울의 테헤란로가 생각났다. 왕복 10차선이나 되는 간선도로에 유명한 글로벌기업과 거대기업의 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국이 한창 중동진출로 달러를 벌어들이던 때인 1977년 테헤란 시장이 서울을 방문해 서울시와 테헤란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기념해 이름 지어진 거리다. 당시만 해도 우리 경제는 이란의 발전상을 부러워하며 오일달러를 벌어 먹고 살던 시기였다. 아마 서울시장은 테헤란시처럼 서울시도 발전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테헤란에 있는 서울로는 6차선 큰 길이지만 35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때나 큰 변화가 없다. 서울로 양옆에는 복층 주거단지와 소규모 오피스들이 듬성듬성 있다. 테헤란에서 만난 이란 사람들은 한국의 발전상을 부러워하며 한국에, 특히 강남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무엇이 한국과 이란을 불과 35년 만에 반대의 처지에 있게 만들었을까? 정치체제, 핵개발 등 다양한 원인을 댈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국민의 잘살아보겠다는 열망과 각오라 생각한다. 아시아의 독일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국제무대에서 서구 대형 브랜드들의 아성에 용감하게 도전하고 신흥국을 끈질기게 공략한 덕분이다. 하면 된다는 신념과 용기를 갖고 세계 제조업의 한계를 허물며 나아갔기 때문이다. 올해의 끝자락에서 이란 경제를 바라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답은 저성장의 고착화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더 성장해야 할 한국이 저성장의 늪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기업은 기업대로 사회적 책임에 취약하고 노동조합은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고 있으며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제도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산 투입을 통해 만들어낸 제한적 일자리 사업으론 근본적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일자리 문제는 경제 전체 구조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모두가 감당할 만한 수준의 임금에 대한 전반적인 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선 기업, 근로자, 사회단체 등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양보와 타협에 의해 임금과 일자리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성장 엔진은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전기 대비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010년 1분기 2.2%에서 2011년 1분기 1.3%로 떨어지더니 올해 들어 1분기 0.9%, 2분기 0.3%, 3분기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수치를 보면 제로 성장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새 대통령의 공약 중에는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지키지 못할 숫자 대신 고용창출에 힘쓰겠다는 것은 맞는 방향이지만 구체적인 성장전략은 있어야 한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일자리 창출정책이 최우선이 아닌 적이 없었지만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국민이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청년들이 즐겁게 출근하는’ 등의 달콤한 공약은 빨리 잊고 성장엔진을 뜨겁게 달굴 고용의 장작불을 지펴야 한다. 이란은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우리는 아니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