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이어 고속성장으로 아시아의 두 번째 용(龍)을 노리던 베트남의 꿈이 사라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베트남 경제에 대해 내린 평가다. 연 평균 7% 이상 성장하던 베트남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며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내수 부진에 부동산시장 불황, 은행권 부실까지 겹쳐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내수 부진과 비리…곳곳에 위험 요소

베트남통계청(GSO)은 올해 GDP 증가율이 5.03%로 추정된다고 24일 발표했다. 이는 1999년(4.8%) 이후 최저치다. 작년 수준(5.9%)에도 크게 못 미친다. 베트남 정부는 올초 6%대 성장을 목표로 잡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 부진 등으로 지난 9월 목표치를 5.2%로 하향 조정했다.

베트남 경제 위축은 우선 물가 상승으로 인한 내수 부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몇 년간의 성장세가 물가를 빠르게 끌어올렸고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있다. 작년 베트남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8.6% 상승했다. 올해 버스요금은 80% 뛰었다.

올 상반기에만 베트남 제조업체 1만7735곳이 내수 부진 때문에 도산하거나 영업을 중단했다. 올해 무역수지는 흑자였지만 수출 증가보다 수입이 급감한 영향이 더 컸다.

베트남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올해 여섯 번의 금리 인하를 단행, 기준금리를 연 15%에서 9%까지 낮췄지만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가계 및 기업대출은 목표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48% 증가에 그쳤고 최근 2개월 평균 CPI 상승률이 7%가 넘는 등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고 있다.

기간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국영기업들의 방만 경영과 공산당원들의 부패도 걸림돌이다. 2010년 국영 조선회사인 비나신이 파산한 데 이어 국영 전력공사, 해운공사도 최근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중앙은행(SBV)에 따르면 기업에 대한 베트남 은행권의 부실대출 비율은 작년의 2배인 10%에 달한다. 이 중 40%는 공산당과 결탁한 국영기업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불황 장기화 우려

미국 부동산 컨설팅업체 CBRE에 따르면 올 3분기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대기업 밀집지역에 있는 사무실 임대료는 2009년 동기 대비 39% 하락했다. 하노이 시내의 공실률도 21%로 전 분기 대비 2%포인트 높아졌다. 하노이, 호찌민 지역 주택 2만채 이상이 미분양 상태다.

부동산시장이 냉각되면서 은행권 부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SBV에 따르면 올 3분기 말 베트남 은행권의 부동산 대출 총 97억달러(약 10조5000억원) 중 6.6%가 부실대출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베트남 은행들의 부실대출 비율은 과소평가됐고 실제 비율은 공식 집계의 3~4배에 이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융권 부실 우려와 원자재 가격, 인건비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을 빼게 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베트남의 외국인직접투자 규모는 작년 동기 대비 약 28% 줄었다. 영국 자산운용사 애버딘의 에드윈 키티에레즈 애널리스트는 “예전의 경제성장세를 되찾으려면 현재로서는 은행권이 대출을 폭발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